위즈돔 사람 도서관에는 사람책이 전시돼 있다. 책 냄새 풍기는 진짜 도서관과는 다르다. 사람도서관에서는 사람이 책이고 인생 경험이 책 내용이 된다. 진짜 도서관과 닮은 점이라면 선택이 자유롭다는 것이다. 위즈돔은 직업, 나이에 관계없이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도록 돕는 '중개소' 역할을 하는 곳이다.
한상엽(31) 씨는 위즈돔 설립자다. 2012년에 문을 연 위즈돔은 2년 8개월 만에 이용자가 2만 3천 명을 넘어섰다. 위즈돔의 성공은 우연이 아니었다. '왜 모든 자본은 한쪽으로 몰려 있을까'라며 유년시절 그가 품었던 궁금증과 사회적 기업이 알고 싶어 '맨땅에 헤딩'하던 대학시절이 지금의 위즈돔을 만든 밑거름이 됐다. 20일 경북대학교에서 한 대표를 만났다.
◆ '격차'에 의문을 품다
한 대표는 이날 경북대학교에서 '공유경제 전도사'로 나섰다. 이 자리는 위즈돔의 대구 진출을 알리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동안 대구지사는 없었지만 대구의 이용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전체 이용자 중 15%가 비수도권 이용자예요. 모임에 참석하려고 KTX를 끊어가며 올라오는 분들을 보면 안타까웠어요. 지역 내에서도 충분히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을 텐데." 위즈돔은 이달 3일, 대구 사람도서관 홈페이지(http://www.wisdo.me/daegu)를 열었다.
한 대표는 유년시절부터 '격차'에 의문을 품었다. 부산, 경남 김해, 전남 보성, 광주 등을 오가며 보냈던 학창 시절 영향이 컸다. "왜 모든 경제, 사회, 문화적 자본은 서울에 집중돼 있을까 궁금했어요. 솔직히 짜증이 났죠. " 한 대표 역시 학창시절 목표는 '인 서울'(in Seoul)이었다. "흔히 말하는 '모범생'이었어요. 재수 끝에 서울에 있는 소위 말하는 '좋은 대학'에 들어갔는데 충격을 받았어요. 제가 살던 곳과 서울은 모든 면에서 차이가 컸던 거예요." 그는 지역 안 격차에도 주목했다. "서울이라고 다 잘 사는 건 아니었어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대학에 다니는 사람들은 정보를 접할 기회가 많았어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사람 만날 기회조차 없었죠. 경제적 불평등이 사회적, 문화적 불균형으로 이어진다고 깨달았어요."
그는 남들보다 빨리, 발로 뛰며 궁금증을 풀어갔다. '사회적 기업'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2006년, 사회적 기업을 연구하는 대학 동아리 '넥스터스'를 설립했다. 동아리에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사회적기업에 관심 있는 직장인, 고등학생도 있었다. 그들이 세운 목표는 사회적 기업의 자료를 모으고, 사람을 모아, 최종적으로는 사회적 기업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현재 넥스터스 출신 사회적 기업가들이 세상에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저소득층을 위한 보청기를 만드는 '딜라이트' 창업자 김정현, 셰어하우스 '우주' 창업자 김정헌, 버려진 현수막으로 에코백을 만드는 '터치포굿' 박미현 대표 등이 넥스터스 출신이다. "당시에 '사회적 기업'을 알려고 하면 국내엔 '넥스터스'밖에 없었어요. 자연스럽게 주변의 관심과 지원이 집중됐죠."
◆보지 못한 주변의 사람들
한 대표는 '격차'를 줄일 해법을 '사람과의 관계'에서 찾았다. "격차는 사람들과의 관계로 완화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손만 뻗으면 닿을 만한 곳에 해답이 있는 데 이걸 대부분의 사람들은 놓치고 살아요."
그의 인생에서도 변곡점은 항상 주변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졌다. 그는 스스로를 '인복이 좋은 사람'이라 말했다. 인생의 고비마다 그에게는 '사람'이 있었다. "스승, 선배, 동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선배의 도움으로 대학시절 소위 말하는 '부자 동아리'에 가입해 원하는 책을 무한정 읽으며 영감을 얻었고, 넥스터스 시절 만났던 '다음'(Daum) 창업자 이재웅 대표의 도움도 여기까지 오는 데 큰 발판이 됐어요."
한 대표는 "누구나 인복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제 경험처럼 인생의 조력자들은 주변에 숨어 있어요. 다만 우리가 만나려고 노력하지 않아서 못 만날 뿐이죠.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조건 전문가를 만나야 하나? 서울로 가야 하나?' 그건 아니라고 봐요. 주변 사람들만 잘 만나도 좀 더 발전된 삶을 살 수 있어요."
위즈돔에서는 일반적인 사람들로 이루어진 '수평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 "모임은 뒤풀이같이 편안한 분위기로 진행돼요. 친밀도가 높은 게 특징이에요. 강연을 듣고 "나 저 사람 안다"라고 말하지는 않잖아요. 또 "연봉이 얼마냐"라는 질문도 하기 어려운데 위즈돔 만남으로는 궁금한 것을 편하게 물어볼 수 있는 '지인'이 생기는 거죠."
위즈돔에서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사람책으로 등장한다. "얼마 전에는 한 고등학생이 사람책으로 등록했어요. 주제는 '고등학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한 사람은 모이세요'였죠. 신기하게도 직장인 분들이 대다수 참석했는데 그중에는 현직 선생님도 두 명이 있었어요. 나중에 들어보니 제자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자리가 됐다고 하더라고요."
◆위즈돔이 나아갈 길
한 대표는 때로 주변으로부터 지적을 받는다. 만남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돈 때문이다. 위즈돔 수익 구조는 참가 신청자가 참가비를 내면 이 중 30%를 위즈돔 수수료로 떼어내는 방식이다. 비용은 서울을 기준으로 평균 1만5천원 정도다. 일부에서는 "결국에는 또 돈을 내야 하니까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장벽이 만들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하는 것이다. 한 대표는 이에 적극 동의했다. "충분히 비판받을 점이에요. 저희도 고민하는 부분이고요." 한 대표는 소외 계층을 위한 새로운 수익 모델을 구상 중이다. "인도에 아라빈드 안과병원이 있어요. 돈 있는 환자는 유료로, 돈 없는 환자는 무료로 치료해주는 병원이에요. 그런데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죠. 저희도 돈이 있는 사람들은 더 많이 내고, 사정이 어려운 사람들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수익 구조를 생각하고 있어요."
오랜 기간 지속 가능한 모임을 정착시키는 것도 과제다. "모임이 지속돼야 서로에게 신뢰가 생기고, 고급 정보가 오갈 수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전체 모임 중 10%만이 지속적인 모임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그래서 월 1회 6개월간 강제로 모임을 갖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실험 중인데 반응은 꽤 괜찮은 것 같아요."
위즈돔의 단기적인 목표는 우선 비수도권 지역에서 위즈돔의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위즈돔은 현재 대구를 비롯해 부산, 대전에서 문을 열었다. "더 이상 지역민들이 서울만 바라보며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주변에서도 찾을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를 이용해 지역 스스로가 발전할 힘을 기르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위즈돔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김의정 기자 ejkim90@msnet.co.kr
사진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위즈돔은
위즈돔은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저마다의 살아있는 경험으로 가득한 한 권의 책'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위즈돔은 이러한 '사람책'을 전시할 수 있고 누구나 전시된 사람책을 만날 수 있도록 돕는 '만남 플랫폼'이다. 위즈돔을 통해 혼자 힘으로는 만나기 힘들었던 사람들, 같은 분야,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자유롭게 네트워킹을 할 수 있다. 위즈돔에 참여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직접 사람책으로 등록해 만남을 개설하거나, 개설된 만남을 신청해 네트워크를 쌓는 것이다. '시인과의 만남', '前 국회비서관과 터놓고 나누는 이야기', '집에서 맥주 만들기', '함께 고민하는 상담소' 등이 현재 사람책으로 등록돼 있다. 위즈돔 대구 사람도서관 정지용 매니저는 "대구 사람도서관에는 대구에서 모이는 사람책들이 전시돼 있다. 주변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사람들, 혹은 본인이 직접 사람책이 되고 싶은 사람들은 홈페이지(http://www.wisdo.me/daegu)에서 신청하면 된다"고 말했다.
김의정 기자 ejkim90@msnet.co.kr
◇한상엽 대표는
한상엽(31) 대표는 2004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학교 수업을 벗어나 '경영학'을 배웠다. 첫 시도는 2005년에 만든 '뭉크'(MUNC)였다. 당시 홍익대 미술학도들의 그림을 티셔츠, 미니홈피 일러스트 등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일을 했다. 2005년 말에는 연세대 창업보육센터에서 창업을 배웠다. 2006년 '세상을 바꾸는 대안기업가 80인'이라는 책을 접하며 사회적 기업에 관심을 갖게 돼 동아리 '넥스터스'를 만들었다. 2007년 인도와 방글라데시를 다니며 본격적으로 사회적기업을 탐방했고 그 내용을 2009년 '아름다운 거짓말'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한 대표는 현재 사람도서관 플랫폼인 '위즈돔'을 운영하며 우리 사회의 계층간 격차를 허무는 데 노력하고 있다.
김의정 기자 ejkim9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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