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영동의 유럽 미술관 기행] ⑦보 데 프로방스 '비디오 파사드'

폐쇄된 시골 채석장에서 펼치는 영상예술쇼

'빛의 채석장'에서 펼쳐지는 구스타프 클림크의 작품들.
'빛의 채석장'에서 펼쳐지는 미디어 파사드

대구에서 컨템퍼러리 아트를 조명하고 소개하는데 앞장서 온 봉산문화회관이 지난달 개관 10주년을 맞아 '미디어 영상쇼(파사드)'를 펼쳤다. 특정한 건물 전면부에 미리 각색된 영상을 입히는 작업인 '비디오 파사드'는 이벤트적 성격을 띤다. 그래서 행사 당일 정해진 시간에 현장에 도착하지 못하면 볼 기회가 없어진다. 기존의 조형예술이 물질적인 존재와 시간적 지속성을 가진 것에 비하면 매우 덧없는 양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비디오 아트를 야심 찬 프로젝트로 상시적으로 공연하는 곳이 있다. 남프랑스 아를에서 멀지 않은 '보 데 프로방스' 지방의 산 위에 위치한 채석장이 멀티미디어 쇼 전용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건축재로 인기가 높은 석회암을 한 세기 이상 채굴했던 곳에 생긴 거대한 동굴이 폐광 이후 쓸모없이 방치되자 이를 활용할 방도를 찾은 것이다. '카리에르 데 뤼미에르'(빛의 채석장)이라고 이름이 붙은 이곳은 장엄한 성전의 내부처럼 반듯하게 잘린 수직 벽면들로 이루어진 여러 개의 텅 빈 공간이 넓은 통로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방들의 천장 곳곳에 수많은 빔 프로젝터를 설치하고 벽면과 바닥 전체를 캔버스처럼 활용해 멀티미디어 쇼를 진행한다. '비디오 파사드' 기법의 예술형식이 상시적인 볼거리를 제공하는 수단으로 채택된 대표적인 예다. 음악과 함께 환상적인 빛의 잔치가 벌어지는 속을 걸으면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소리와 색채가 난무하는 공간에 녹아든다.

필자가 방문했을 때 펼쳐졌던 영상 쇼 제목은 '클림트와 비엔나, 황금과 색채의 세기'였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들과 그의 영향을 받은 동시대 젊은 작가들인 에곤 쉴레, 오스카 코코슈카 등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당시 비엔나 시의 여러 곳을 담은 풍경들이 음악과 함께 편성돼 나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란 제목의 10분 짜리 영상도 선보였는데 3명의 감독이 참여해 만든 작품들이다. 흔히 화랑이나 미술관에서 경험하기 힘든 스펙터클한 광경에 노출된 관람객들은 환상적인 빛의 쇼에 넋을 잃거나 신비롭게 공명되는 음악이 흐르는 동안 명상적인 분위기에 젖어들다 꿈에서 깨듯 밖으로 나오게 된다.

요즘 현대미술에서 영상설치는 가장 주된 매체로 자리 잡았다. 다큐멘터리부터 실험적인 내용까지, 타인을 인터뷰하는 형식부터 작가의 자전적 개념을 모놀로그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까지 영상매체가 폭넓게 활용된다. 하지만 멀티미디어 작품의 경우 화려한 영상이나 독특한 개성으로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지 못하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특히 명상적인 작품은 몰입을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 지루한 장면을 끝까지 지켜볼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영상설치의 제작 패턴을 쇄신하려는 새로운 시도들은 메시지의 내용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비디오 아티스트 중에는 특별한 장소에 매료되어 '장소 특정적'인 작품을 꿈꾸기도 한다. 기존의 실내 설치방식보다 야외무대를 활용해 보다 넓은 장소와 탁 트인 공간을 수용하려는 양식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무엇보다 장소와 시간이 중요한데 오스트리아 비엔나 시청사 앞 광장이 그런 곳 중의 하나다. 19세기 말 신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청사 건물 '라트하우스' 전면에 은막을 걸고 매년 여름 필름 페스티벌이 개최된다. 이 건물 전면부 전체를 캔버스 삼아 펼쳐졌던 '비디오 파사드' 쇼가 생각난다. 바로 비엔나의 클림트를 포함한 빈 분리파 회원들의 작품들과 그들의 눈에 비친 도시의 모습으로 만든 영상 쇼를 '빛의 채석장'에서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많은 작품들은 벽화 형태로도 제작되었다.

김영동 미술평론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