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보행자는 도로 위 약자다. 자동차 운전자들은 보행자에 대한 배려 없이 막무가내 운전을 일삼는다. 보행자를 보면 멈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빨리 지나가라고 성화다. 이런 교통환경과 문화로 인해 지난해에는 34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보행자 사고율 1위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대구는 우리나라에서도 보행자 사고율이 높은 편이다. 보행자를 위한 시설 개선과 더불어 교통의식의 변화가 시급한 이유다.
◆사고 위험에 노출된 보행자
지난 4월 28일 오전 2시 15분쯤 대구 북구 산격3동 왕복 6차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김모(52) 씨가 도로 맞은편 1차로에서 조모(32) 씨 승용차에 치여 숨졌다. 당시 이곳은 황색 점멸등 신호라 주의 운행해야 했지만 조 씨는 김 씨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채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렸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대구에서 보행자 사고는 3천99건(5.4%) 발생했다. 이는 전국 7곳의 특별'광역시 가운데 서울(1만1천81건)과 부산(3천975건)에 이어 세 번째며, 7위인 울산(1천167건)의 2.7배에 이른다.
같은 해 대구의 보행자 사고 가운데는 무단횡단 사고(32%, 992건)가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횡단보도 통행 중 사고(6%, 187건) ▷차도 통행 중 사고(5.9%, 183건) ▷도로변 통행 중 사고(5.3%, 167건) 등이 뒤를 이었다.
대구경찰청이 지난해 꼽은 대구의 '보행자 사고 다발지역'(이하 보행사고지역)은 24곳(2011~2013년 통계 기준)이나 된다. 보행사고지역은 최근 3년간 반경 300m 내에서 보행자 사고가 4건(특별'광역시 기준) 이상인 곳을 선정한다. 경찰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보행사고지역에서 발생한 사고는 159건. 이들 지역에서 12명이 죽고 149명이 다쳤다. 구별로는 중구(8곳)와 북구(6곳)에 보행사고지역이 많았다.
◆보행자 뒷전인 교통환경이 문제
보행사고지역 중 한 곳인 경북대 동문 인근의 북구 산격3동과 동구 신암1동 사이 'ㅓ' 자형 삼거리(직진도로 경우 왕복 2차로)는 무단횡단 다발지역이다. 이곳 보행자 대부분이 동문과 버스정류장, 카페를 오가는 대학생이다.
동문과 버스정류장'카페가 도로 폭 6m인 왕복 2차로를 사이에 두고 대각선으로 30m 정도 떨어져 있고, 그 사이에는 횡단보도가 없다. 또 차들이 동문과 정류장 사이에 난 이면도로로 좌회전해 들어갈 때마다 주변 차량이 속도를 늦춘다. 그렇다 보니 학생들은 도로를 사선으로 가로질러 간다. 대구지방경찰청이 이런 문제를 막고자 올 초 동문 바로 앞에 횡단보도를 설치했지만, 대학생들은 여전히 습관처럼 무단횡단을 하고 있다.
11일 오후 1시쯤 경북대 동문에서 북쪽으로 20m 정도 떨어진 버스승강장에 버스 한 대가 정차하자 10여 명의 학생이 내렸다. 이들은 학교 쪽을 향해 단체로 무단횡단했다. 인근 카페에서 나온 이들도 도로 양쪽을 거리낌 없이 오갔다. 10분 동안 학생 20여 명이 동문 바로 앞 횡단보도를 이용하는 대신 도로를 가로질러 갔다. 전문가는 "이 같은 도로에선 횡단보도가 있는 곳까지 인도 측면에 울타리를 설치해 무단횡단을 포기하게끔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구의 보행자 사고가 잦은 이유는 교통 체계 및 문화의 무게중심이 자동차에 실려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운전자는 언제든 도로 위에 보행자가 나타날 수 있음을 의식하고 주의 운전해야 하지만 이를 지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골목 곳곳에 주차된 차들 탓에 보행자가 이를 피해가기 일쑤고, 보행자가 없으면 횡단보도 신호등이 녹색일 때도 차들이 지나간다. 횡단보도가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대학이나 다중이용시설 출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도 많고, 차량 교통량이 적은 곳에서도 보행자 신호 시간이 긴 곳이 많다 보니 무단횡단이 잦다는 것.
김세근 도로교통공단 안전시설부장은 "보행자 사고는 교통안전시설이 보행자 기대에 맞지 않는 곳에서 발생한다"며 "횡단보도는 보행자 동선에 맞게 설치하고, 보행자 통행량이 많은 곳에서는 차량이 속도를 늦추도록 과속방지턱을 설치하거나 안전표지판, 노면 안내문을 확대 설치해야 한다"고 했다.
◆대구는 지금 '보행환경 개선 중'
대구시는 2010년부터 '보행환경 개선사업'을 벌이는 등 보행자를 우선에 둔 교통환경을 만들고 있다. 시는 지난해까지 중구 대봉로(봉산육거리~대봉네거리)와 중구 종로(국채보상로~북성로) 등 6곳에 30억원을 들여 인도를 신설'확장하고 가로등을 설치하는 등 운전자가 보행자를 배려하도록 했다. 올해와 내년에는 북구 산격로'대학로 등 3곳에 121억원을 들여 이곳을 '보행자 중심도로'로 개선할 예정이다.
이 가운데 한 곳인 북구 산격로'대학로 일대는 경북대 북문과 인접해 있고 주거지와 상가가 섞여 있다. 이 때문에 하루 평균 유동인구가 2만5천 명(북구청 용역 결과)이 넘는 곳이다. 특히 오후 6~7시엔 경북대 북문 인접 지점의 보행 통행량이 시간당 2천300여 명에 달하고, 차량 통행량은 평균 시간당 50대 정도다. 이런 탓에 2010~2012년 이곳에서 발생한 전체 교통사고 164건 중 보행자 사고가 43건(26.3%)이나 된다.
북구청은 이곳 대부분이 이면도로 구간인데다 안전표지판 설치 상태가 좋지 않고, 불법 주'정차가 많아 통행 가능한 도로 폭이 좁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이를 바탕으로 내년 이곳의 도로 포장재를 아스팔트에서 화강석 블록으로 교체하고, 일방통행로 구간을 확대하기로 했다. 더불어 ▷공영주차장과 보도 ▷가로등'보안등 ▷시간제 차량 진입 차단 시설 ▷주차단속 폐쇄회로TV ▷과속방지턱 및 고원식(도로보다 높이를 돋워 만듦) 횡단보도 ▷횡단보도 LED 발광장치 등을 설치하는 등 개선 사업을 벌인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도로 환경을 정비하고 보행자와 운전자가 서로 배려하는 교통문화를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용진 계명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가장 이상적인 교통 시스템은 서구 국가가 추구하는 비신호 체계다. 운전자와 보행자가 배려와 합의 아래 움직이는 문화가 정착된다면 보행자를 위한 최소한의 교통시설만으로도 보행자 교통사고가 크게 줄어들 것이다"고 했다.
홍준헌 기자 newsfor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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