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무단횡단 천국' 영국에선…

'보행자 우선' 준수 철저, 사람 보는 즉시 차 세워 사고율 한국의 17% 불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영국의 인구 10만 명당 보행사고 사망자 수는 0.7명. 어린이(14세 이하)는 0.3명, 노인(65세 이상) 1.5명 등 보행자 안전도가 상위권에 속한다. 반면 같은 해 우리나라의 10만 명당 보행사고 사망자 수는 4.1명이나 된다. 어린이는 0.7명, 노인은 15.6명이다. 무단횡단 천국인 영국의 보행자 사고율이 우리나라의 17% 수준인 셈이다.

영국의 보행자 중심 교통문화는 1800년대 '적기조례'(red flag act)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마차를 타던 영국인들은 17세기 무렵 등장한 증기자동차의 빠른 속도와 수송 능력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1834년 증기 버스의 보일러 엔진이 폭발하면서 승객 2명이 사망하는 최초의 증기차 사고가 발생한 이후 크고 작은 자동차 사고가 일어났다. 이에 1865년 빅토리아 여왕은 "자동차 운행 속도를 교외에서 시속 4마일(6㎞/h), 시가지에선 시속 2마일(3㎞/h)로 제한하고, 자동차 운전 때 반드시 붉은 깃발을 든 기수가 전방 55m 앞에서 차량이 통행 중인 사실을 안내해야 한다"는 적기조례를 선포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교통사고가 급증했던 영국은 강력한 교통안전정책을 추진했다. 차량속도를 줄이게 하는 '교통정온화법'(the traffic calming act)이 대표적이다. 차선을 직선이 아닌 사선으로 표시해 도로가 점점 좁아지는 것처럼 착시효과를 주고(로드마킹기법), 도로 양 끝에 화단을 만들어 도로 폭을 줄인 초커도로(choker road)를 설치했다. 또 S자형 도로(s-road)를 만들어 속도를 줄이게 하고 앞 차량에 운전자 시야가 방해받는 일도 방지했다. 횡단보도 앞 15m 거리에서부터 횡단보도까지는 차선을 구불구불하게 그려 운전자의 주의를 유도하고 있다.

영국 교통문화는 반드시 보행자를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자리를 잡았고, 특히 무단횡단은 한 번도 불법으로 명시되지 않았다. '무단'으로 길을 건넌다는 개념이 아예 없는 것이다. 또 대부분의 도심 도로가 2차로인데다 운전자들이 보행자를 보는 즉시 차를 멈출 정도로 보행자 배려에 익숙하다. 이 같은 영국인의 인식이 뿌리 깊게 내려온 덕에 영국은 '보행자의 천국'이 됐다.

홍준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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