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화와 현실을 잇는 금오산] <3>은자의 마을

할딱고개 너머로…가뭄도 가난도 없는 '산중 낙원'

금오산은 기암괴석이 곳곳에 절벽처럼 서 있다. 등산로 절벽에 돌탑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금오산은 기암괴석이 곳곳에 절벽처럼 서 있다. 등산로 절벽에 돌탑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1960년대 성안마을 모습. 금오산 정상 바로 아래 자리 잡은 이 마을에는 배추농사를 지으며 세상과 동떨어진 삶을 사는 사람들이 얼마 전까지 살고 있었다. 구미시 제공
1960년대 성안마을 모습. 금오산 정상 바로 아래 자리 잡은 이 마을에는 배추농사를 지으며 세상과 동떨어진 삶을 사는 사람들이 얼마 전까지 살고 있었다. 구미시 제공

금오산 현월봉에서 서남쪽으로 600m 정도 걸어 내려오면 평평한 분지(盆地)를 만난다. 해발 800m 지점으로 1970년대까지 이곳에 마을이 있었다. 바로 '성안마을'이다.

등산객들이 숨을 헐떡인다는 '할딱고개'에서도 1.9㎞ 정도를 더 올라가야 도착하는 동네다. 마을에서 서쪽으로 내려가면 김천시가 나오고, 남쪽으로는 칠곡군 북삼면에 이른다.

◆그들만의 세상, 성안마을

해발 800m에 자리 잡은 성안마을은 할딱고개에서도 한참을 더 올라가야 하는 곳에 있다. 산 아래 사람들은 부지런히 이 마을을 오르내렸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성안마을 사람들은 좀처럼 산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태어나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금오산 밖으로 나가보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평범한 성안마을 사람들에게 금오산은 세상의 전부였고 삶의 시작과 끝이었다.

금오산에는 기암괴석이 곳곳에 절벽처럼 서 있다. 분지를 이루고 있으나 성안마을에 벼농사를 지을 논은 없었다. 주민들 대다수는 밭농사와 약초 채취로 생계를 이어갔다.

그럼에도 성안마을 사람들은 산 아래로 이주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디든 갈 수 있는 산 아래 사람들이 산에 갇힌 성안마을을 찾아왔다. 마을 북동쪽의 구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서쪽의 김천 사람들, 남쪽의 칠곡 사람들이 성안으로 쌀이며 옷가지, 생선과 그릇, 생필품을 이고 지고 올라왔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금오산성에 주둔한 군인들에게 팔 물건을 갖고 왔다가 성안마을 사람들에게 팔기도 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금오산 곳곳에 자리한 절을 방문했다가 성안마을에 들르기도 했다. 그들은 이고 지고 온 물건을 내놓았고, 성안마을 사람들은 성안의 특산물인 배추와 땔감, 산나물을 내놓았다.

◆물이 마르지 않는 마을

농사는 하늘과 사람이 함께 짓는 일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보다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았다. 농사라고 하지만 옛날에는 오히려 사람이 조력자에 불과했다. 성안마을 사람들이 재배한 배추는 산 아래 주민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채소였다.

배추는 생육 기간 내내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 작물이다. 그래서 빗물에 농사를 의존하던 옛 사람들은 통이 굵고 속이 꽉 찬 배추를 얻기 어려웠다. 금오산 아래 사람들은 넓은 들에서 해마다 변함없이 구슬땀을 흘렸지만 해마다 속이 꽉 찬 배추를 얻지는 못했다. 하늘이 제때 비를 내리지 않는 한 농부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안마을은 달랐다. 칼날 같은 암벽이 곳곳에 솟아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금오산에는 물이 많았다. 작은 마을이었지만 성안마을에는 여러 개의 우물과 크고 작은 저수지가 있었다.

그래서 금오산 아래에서 밭을 가는 농부들이 가뭄으로 애를 먹을 때도 성안마을 사람들은 물 걱정을 하지 않았다. 산 아래 논들이 가뭄에 갈라지다 못해 흙먼지를 날릴 때도 성안마을의 배추밭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그래서 이 마을 사람들이 길러내는 배추는 언제나 통이 굵고 속이 꽉 찼다.

◆세상 걱정없는 별천지 마을

농약도 비료도 없던 시절 산 아래 사람들이 부족한 비료분과 가뭄, 해충에 한숨지을 때 성안 사람들은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었다. 해발 800m에 이르는 성안마을은 한여름에도 평균기온이 산 아래보다 10℃ 정도는 서늘해 병해충이 창궐하는 일이 없었다.

게다가 배추는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는 작물이다. 여기에 화산회토(火山灰土)와 부식토가 많았고, 사방에 지천으로 널린 나무들은 해마다 잎을 떨어뜨려 성안마을 농부들에게 충분한 부엽토를 주었다. 화전을 가꾸는 중에 나온 재에는 인산과 칼리 성분이 많아 성안 배추는 그야말로 아삭아삭한 최고의 맛을 냈다.

성안으로 지게를 지고 들어갔던 상인들이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 지게 가득 성안 배추를 지고 산에서 내려오면 산 입구까지 와 있던 아낙네들이 서로 배추를 사기 위해 다투었다. 배추는 산에서 내려오기 무섭게 동이 났다.

옛날 금오산 성안마을 사람들은 마을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세상과 만날 수 있었고, 세상이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해발 800m 고지에 마을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들고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오산은 우리나라의 진산이면서 동시에 별개의 세계였다. 성안마을 사람들은 산 밖의 일에 관여하지 않았고, 관여할 필요도 없었다. 금오산은 그 자체로 완벽한 세상이었고, 성안마을에서 태어난 아이는 금오산에서 한 세상을 열고 닫았다. 조두진 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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