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직장생활 애증의 대상 '상사'…상사들도 할 말 있다

'직장 상사' 대구은행 수신기획부 김방수 부장.(사진 왼쪽) '부하 직원' 대구은행 본점 영업부 장명기 대리.

직장 상사에 대한 이런저런 푸념을 한바탕 듣고 나니 '취재원에 대해 형평과 공정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한국기자협회 언론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직장 상사들 또한 그들만의 희로애락이 다 있을진대 그걸 눈감아버리면 윤리강령과 실천요강이 말하는 정신에 어긋날뿐더러 이 기사를 쓰는 기자의 직장 상사도 매우 섭섭해 할지 모른다는 데까지 생각이 뻗치게 됐다.

그래서 푸념의 대상인 직장 상사들을 만나 그들의 속마음은 어떠한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실제로 기자가 만나 본 부장급 이상의 직장 상사들은 "직장 상사 자리에 대한 오해가 참으로 많다"는 토로를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한마디 일갈이 크게 울렸다.

"너네들도 내 자리에 올라가 봐라. 마음대로 되나."

◆이 자리가 꽃놀이패는 아니다

대구은행 수신기획부 김방수 부장은 "말단 직원일 때는 '부장 자리에 올라가면 일이 편해지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 자리에 올라가 보니 업무량과 심리적 부담감이 장난이 아니다"라며 "부장(部長)의 '장'(長)이 '길 장'이 아니라 '늙을 장'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기자가 만나 본 직장 상사들은 "이 자리가 절대 쉬운 자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꿈에 그리던 '상사'가 되니 책임져야 할 부분은 오히려 늘었고 자신을 방패막이해 줄 사람을 찾기보다 자신이 방패가 돼 막아 줘야 할 사람이 더 많아졌다. 말단 직원일 때는 앉아서 결재만 하면 되는 자리인 줄 알았는데, 업무의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지 못하면 결재하는 손이 떨리는 자리였음을 알아차리는 것도 금방이더란 것이다. 그만큼 고민도 많고 책임져야 할 일도 많다 보니 알게 모르게 골병드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한 대기업의 대구경북지역본부의 A부장은 한때 업계에서 강철 체력을 자랑하던 사람이었으나 결국 위암 1기 판정을 받고 치료를 위해 휴직계를 낸 적이 있었다. A부장은 "그만큼 이 위치가 고민도 많고 책임도 많다 보니 결국 내 몸 챙기는 건 뒷전으로 가더라"고 말했다.

◆'개인가치'회사가치' 적응 힘들었다

부하 직원과의 관계에서 직장 상사들이 털어놓는 가장 힘든 부분이 바로 '가치관 갈등'이었다. 특히 자신이 말단 직원일 때의 생각과 지금의 부하 직원들의 생각이 달라도 너무 다르더라는 것이다.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방성수 사무처장은 "예전보다는 지금 직원들이 조직 구성원으로서의 역할 의식이나 팀워크가 약한 것이 사실"이라며 "자기 가족보다 더 얼굴을 오래 보는 사람들이 직장 동료들인데 그 점에 대해서 잘 생각하지 않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특히 많은 동료 직원들이 눈코 뜰 새 없이 업무에 매달려 있는데 혼자만 '개인적인 사유'라며 빠지는 상황이 발생하면 부서장의 입장으로서는 정말 난감해진다. 이런 부분들이 팀워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요즘 직장 상사들은 개인가치를 추구하는 경향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인정하고 용인하는 경우가 많다. A부장은 "후배 직원들은 '회사가 자신의 인생을 100% 책임져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 이 조직이 나를 언젠가는 버릴 것이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는 듯하다"며 "미래에 대한 불안함은 부장 직급인 나도 마찬가지인데 평생을 회사에 매달려 보낸 나의 입장에서 후배들의 사고방식이 때로는 부러울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때로는 부하 직원의 눈치를 볼 때도 있다. 김방수 부장은 "점심 메뉴와 같은 소소한 부분부터 업무적인 부분까지 부하 직원들의 능력과 취향을 존중해주려고 노력하지만 때로는 '이런 식의 태도가 오히려 부하 직원들이 내 눈치를 더 보도록 만드는 게 아닐까'하는 고민을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들이 말하는 '좋은 상사'란?

이들도 한때는 말단직원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원하고 또 자신이 되고 싶은 좋은 상사의 모습도 분명히 존재한다. 김방수 부장, 방성수 사무처장, A부장 모두 좋은 상사의 조건으로 '신뢰'와 '실력'을 들었다.

A부장은 "부하 직원에게 일을 맡겼으면 그만큼 믿고 기다려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팀워크는 한순간에 생기는 것이 아니기에 부하 직원에 대한 믿음과 인내심은 팀워크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말이었다. A부장은 "'나는 똑똑한데 부하 직원들은 나를 잘 못 따라온다'라고 생각하는 상사는 결국 윽박지르기나 '카리스마'를 가장한 독재적 리더십을 보이기 마련"이라며 "'나 하나 빠져도 조직은 잘 돌아간다'는 마음으로 부하 직원을 신뢰하고 부서장은 조직이 나아갈 방향을 제대로 잡아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방수 부장은 "부장이 실력이 있어야 신뢰가 생긴다"고 말했다. 업무에 대한 역량을 제대로 보여주는 상사라면 부하 직원들이 믿고 따른다는 것이다. 방성수 사무처장은 "일을 보는 정확한 시각과 함께 공과 사를 구별할 줄 아는 능력이 상사의 기본 덕목"이라며 "상사가 똑똑하지 않으면 부하 직원들만 고생하고 인정받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프로의식' 좀 더 있었으면

"일 열심히 해주면 누가 뭐라나요."

'부장님'들이 부하 직원에게 바라는 것은 다른 게 없었다. 바로 일을 잘하는 것이다. 김방수 부장은 "우리가 직장에서 월급을 받는 이유는 결국 '일을 하기 때문'아닌가"라며 "놀 땐 놀더라도 일할 때는 확실하게 성과를 내 주길 바라는 게 모든 부서장의 마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방성수 사무처장은 "업무에 관해서는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는 부하 직원이 사랑받는 것은 당연하다"며 "업무 때문에 상사와 부하가 부딪혔을 때 상사의 업무 성향 파악과 그에 맞는 논리로 상사를 설득하는 부하 직원이라면 함부로 미워할 수 없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A부장도 부하 직원들이 좀 더 '프로 의식'을 가지고 일해 주길 바랐다. A부장은 "적어도 업무적인 부분에서 서로 이야기를 맞춘 부분은 확실하게 해 줘야 하는 게 맞다"며 "적어도 자신이 사회에 나와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면 이 일에 관해서는 완벽하게 처리하겠다는 '프로' 의식과 책임감을 갖고 일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상사에게 다가와 주길 바라는 목소리도 있었다. 김방수 부장은 "상사의 위치가 되니 밥 먹을 때나 회식 때 내 옆에 앉으려는 사람이 점점 없어지더라"며 "상사와 자꾸 부딪혀보고 소통하려고 노력해야 상사도 자신의 매무시를 고치기도 하고 부하 직원의 업무 능력도 발전할 수 있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이화섭 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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