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예산안 심사 법정처리 시한(12월 2일)을 나흘 앞둔 28일 여야는 예산안을 둘러싼 핵심 쟁점에 대해 극적인 합의를 도출했다.
지난 26일 새정치민주연합이 누리과정(3~5세 무상보육) 사업 예산을 문제 삼아 국회 모든 의사일정을 보이콧할 때만 해도 예산안 법정시한 내 처리는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여야는 이날 모처럼 대화와 타협을 통한 상생의 정치를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회는 지난 1987년 개헌 이래 지금까지 총 26번 예산안을 의결하면서 6번밖에 법정처리 기일을 지키지 않았다. 특히 1996년 이후엔 대통령선거가 있던 두 해(1997년, 2002년)에만 미리 처리했을 뿐 매년 시한을 어기는 상황이 계속됐다. 따라서 이번에 예산안이 법정시한 내에 처리될 경우 2002년 이후 12년 만에 법을 지키는 셈이 된다.
하지만 여야가 예산안 처리의 법정시한 준수는 이뤘지만 예산 심의의 마지막 날(30일)이 이틀밖에 남지 않아 올해에도 부실'졸속 심사가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사자방'(4대강'자원외교'방위사업) 국정조사와 공무원연금 개혁 협상은 정기국회 이후로 미뤄져 정국의 뇌관으로 남게 됐다.
◆주고받기식 '빅딜' 성공
여야는 28일 누리과정 예산배정 문제 등 새해 예산안 심사와 관련된 핵심 쟁점들에 대해 '주고받기식' 절충으로 '빅딜'에 성공했다.
야당의 직접적인 보이콧 배경이 됐던 누리과정 예산에 대해서는 2015년 누리과정 순증액 전액 상당을 국고를 통해 우회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누리과정 예산은 기본적으로 시'도 교육청에서 부담하되, 내년도 누리과정 지원 확대에 따른 순증분을 교육부의 다른 사업예산을 증액해 우회적 방법으로 지원하기로 정리한 것이다.
여야는 그동안 누리과정 지원 규모를 놓고 갈등을 빚어왔지만 이날 합의문에도 구체적 금액은 명시하지 못했다. 다만 야당이 순증액을 5천233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해왔고, 새누리당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도 "5천233억원이든 그 이상이든 이하든 거기서 정하는 대로 할 것"이라고 말해 사실상 5천억원대에서 결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또 담뱃값은 2천원 올리고, 담뱃세 중 개별소비세 가운데 20%를 새로 도입하기로 한 소방안전교부세로 돌리기로 했다. 소방안전교부세는 국세로 징수해 지방에 보내주는 형식으로 연 최소 2천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여당의 담뱃세 인상 추진을 '서민증세'라고 비판하며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새정치연합이 요구해왔던 법인세 인상 문제는 '비과세'감면 혜택 축소'로 출구를 찾았다.
법인세 비과세'감면 항목 가운데 대기업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의 기본공제를 폐지하고, R&D(연구개발) 세액공제의 당기분 공제율을 인하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연 5천억원 정도의 세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여야는 추산했다.
새누리당이 야당의 법인세율 인상이나 기업의 최저한세율 인상 요구는 막으면서도 비과세'감면 혜택 축소로 한 발짝 물러서면서 접점을 찾은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사자방' 국정조사와 공무원연금 개혁, 정치개혁특위 구성과 운영에 관한 사안은 정기국회 종료(12월 9일) 후 여야 당대표와 원내대표 연석회의에서 협의를 시작하기로 했다.
◆향후 남은 절차는?
여야는 이날 담뱃값을 2천원 인상하는 데 합의함에 따라 담뱃값 관련 법안들이 내달 2일 본회의에서 일괄 처리될 전망이다. 이 밖에 여야는 쟁점이 없는 법안들을 정기국회 내에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여야 합의에 따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30일까지 소위심사와 전체회의 의결을 마칠 계획이다.
이후 12월 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등 각 상임위를 열어 담뱃세 인상 등 세법 개정안을 의결한 뒤, 다음 날인 2일 본회의를 열고 예산안과 예산부수법안 등을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30일까지 예산안 심사를 마무리해야 하는 국회는 당장 28일부터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위 등의 가동에 들어갔다.
기재위는 28일 여야 합의 직후 조세소위를 열고 세법 심의에 들어갔다. 향후 기재위 전체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야 하는 빠듯한 일정이어서, 조세소위는 예산안 부수법안들과 비쟁점 법안을 우선 처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안전행정위원회와 보건복지위원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등 다른 상임위원회들도 예산안 처리 부수법안들에 대한 심사를 시작해 예산안 처리 시점까지 심사를 완료해야 한다.
국회 한 관계자는 "여야가 오랜만에 정치적인 빅딜을 통해 예산안 처리의 법정시한 준수는 지켰지만, 예산 심의 일정이 너무 빠듯해 부실'졸속 심사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고 말했다.
정욱진 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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