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71세가 막내 출석 부르면 "네∼" 큰 대답

경북대 평생교육원 명예대학원…인문학·시사 등 과목도 다양

24일 경북대학교 평생교육원의 명예대학원 종합반 강의실에서 70~100세 어르신 1학년생들이
24일 경북대학교 평생교육원의 명예대학원 종합반 강의실에서 70~100세 어르신 1학년생들이 '국제관계' 강의를 열심히 듣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내 나이가 어때서? 배우고 싶은데."

흰머리 지긋한 노인들이 '열공'에 빠졌다. 그 주인공은 만학(晩學)의 열기로 뜨거운 경북대학교 평생교육원의 명예대학원 종합반(이하 종합반) 1학년생들. 70~100세인 종합반 1학년생들이 나이를 잊은 채 배우는 과목은 역사와 인문학, 정치, 교양, 건강, 예술 등 다채롭다.

◆배움의 열기로 달아오른 캠퍼스

24일 오후 1시쯤 대구 북구 산격동 경북대 평생교육원 강의실. 종합반 1학년의 '국제관계' 수업이 시작됐다. 이날 강의를 맡은 전계완 정치평론가가 한 사람씩 출석을 부르자 강의실에 "네~"라는 목소리가 울렸다. 동북아시아 지도를 짚어가면서 일본의 국제 전략을 설명한 뒤 북한 문제에 대해 강의를 했다. "한국이 북한 문제를 풀기 어려운 데는 '3대 세습체제' '북한 핵' '인권' 등 3가지 구조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선 남'북한이 함께 영세중립국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흰머리에 주름이 깊이 팬 노인들은 강의내용을 빠뜨리지 않고 노트에 또박또박 적었다. 교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집중하면서 진지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수업 막바지에 질문이 쏟아졌다. 남의진(80) 씨는 "과연 북한이 남한과 함께 중립국으로 가려고 할지 의문이다"며 "북한은 지금도 핵을 가지고 위협하고 있다. 앞으로 평화 협상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국익의 관점에서 북한 문제를 풀려면 압박하거나 방치하기보다 적극적으로 설득을 해야 한다"는 답이 이어졌다. 두 사람이 논쟁을 이어가면서 수업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산전수전 겪은 '만학도'

종합반 1학년생은 모두 31명. 이들의 평균 나이는 80대 중반이다. 최고령은 100세(호적상 95세)이고, 71세가 막내다. 모두 명예학생과 명예대학원 과정을 거쳤다. 이 때문에 평생교육원에 다닌 햇수가 적게는 10년, 많게는 20년까지 된다. 이들은 교사와 공무원, 사업, 회사원, 주부 등으로 젊음을 보내고 다시 학생으로 돌아왔다.

종합반 1학년이 이번 학기에 듣는 과목은 '인체의 신비와 기능' '국제관계' '인물로 본 서양사' 등이다.

이들은 배움에 대한 갈증에 이끌려 평생교육원의 문을 두드렸다. 장숙자(73) 씨는 학창시절 대학 합격 통지를 받아놓고도 '딸'이라는 이유로 집안에서 반대해 진학을 포기했다. 이후 배움에 대한 한이 남았고, 2000년 경북대 평생교육원에 입학했다. 올해까지 한 해도 쉬지 않고 수업을 들은 장 씨는 "많은 과목 중 한국사와 세계사 공부가 가장 재미있다"며 "역사의 흐름을 되짚어가면서 현재 시사문제에 대한 안목도 키웠다"고 했다.

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임한 백용근(85) 씨도 19년째 평생교육원을 다니고 있다. 그는 "퇴직 이후 친구 모임에 나가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기 싫었다"며 "수십 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쳤지만 뭔가 새로운 것을 다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은 끝이 없다"고 했다.

◆배우려는 마음가짐이 '청춘'

종합반 1학년생들은 지난해 명예대학원 등을 졸업했지만, 계속 수업을 듣고 싶어 했고 이런 바람이 받아들여져 같은 해 명예대학원 종합반이 신설됐다.

이들은 무엇보다 배울수록 젊은 세대와 소통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청년협의회 칠곡군연합회 초대회장을 역임한 이융상(76) 씨는 올해로 평생교육원에 다닌 지 20년째다. 이 씨는 "정치와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면서 젊은 사람들과 만나도 막힘없이 대화가 이뤄진다"고 했다.

초등학교만 나왔던 이순기(70) 씨는 50세가 넘어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59세에 대구의 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 씨는 "손자가 친구에게 '우리 할머니는 학생이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봐'라고 자랑하기도 한다"며 "사위가 손자들이 나를 본받아 공부를 끈기 있게 하는 것 같다고 말할 땐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경북대 평생교육원은 1995년 문을 열었다. 현재 명예학생과정과 명예대학원과정(종합반 포함)을 운영하고 있다. 만 55세 이상이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고, 1~3학년제로 진행된다. 이곳은 대구경북의 많은 평생교육원 중 유일하게 명예대학원을 두고 있다.

홍해숙 경북대 평생교육원장은 "국립대학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노인들에게 평생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며 "노인들이 배움에 대한 갈증을 없애고 친목을 다지는 값진 자리가 되고 있다"고 했다.

서광호 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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