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이승만이 있다면 유럽엔 서영해가 있다!' 탁월한 외교능력을 보인 파리 독립운동가 서영해(徐嶺海·1902~?·사진 오른쪽)는 잊힌 인물 신세다. 부산의 부유한 한의사 아들로 태어나 1919년 3·1운동에 가담했다가 중국으로 망명,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했다. 임정 외교담당 조소앙 등의 권유로 파리로 유학, 초·중·고교 과정을 마치고 1929년 고려통신사를 설립해 일제 만행을 폭로했다. 임정 파견 김규식과 함께 5개월간 파리에서 독립활동도 펼쳤다.
파리 활동 때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국 역사소설 '어느 한국인의 일생', 한국 민담을 모은 '거울, 불행의 원인 그리고 기타 한국 우화'란 책을 펴냈다. 1940년 독일의 프랑스 점령 땐 영국 런던에서 '자유프랑스'란 프랑스 망명정부 지지 활동에 동참했고, 1945년 3월 임정의 주프랑스 대표 선임 등으로 광복 때까지 외교로 항일 독립운동을 했다. 광복 뒤 귀국, 1948년 교사와 결혼했으나 이승만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발, 부인과 프랑스에 가려 상해에 도착한 뒤 행방이 묘연해졌다.
그러나 1948년 오늘 파리에서 프랑스 외무부 아시아·대양주 국장과 면담해 파리 코리아통신사 운영재개 지원문제, 파리 동양어학교 한국학 강좌신설 문제, 프랑스 대학 한국인 장학생 5명 파견문제 등을 논의한 기록에 비춰 홀로 프랑스에 간 것으로 추정될 뿐 행적이 분명치 않다. 부인은 1949년 귀국, 남편 기다리다 1989년 삶을 마쳤고 남편에겐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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