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사 프리즘] 우리가 변해야 한다

"대구경북 사람들은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명쾌하게 인사를 건네지 않고, 알아줄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유명 인사나 고위 공무원의 이름을 거론하며 그들과 꽤 친분이 있다고 말하고 그런 특별한 자신을 먼저 알아주기를 기다린다." 서울에서 오래 생활하다가 공기업의 기관장으로 수년 만에 고향인 대구로 오신 분이 사석에서 토로한 소회다. 자신의 신분이나 인맥을 과시하고 잘난 척하며 거만하게 행동하는 것을 경상도 사투리로 '제낏하다'고 한다. 그분에게는 대구경북 사람들이 제낏하게 비친 것이다.

남이 날 알아주기를 바라고 보여지는 모습에 너무 치중하는 사람들, 자신을 특별한 힘이나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인식시키고, 그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키고자 하는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불편감을 준다. 그런 사람은 상대방에게 어서 자리를 떠나고 싶게 만들고,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성가신 사람으로 분류되고 만다. 만약 대구경북 사람들이 외지인에게 이렇게 비친다면 이것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문제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일부 사람들에 대한 평가일 수는 있을지언정, 한 지역의 전체에 대한 평가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런 사람이 어찌 대구 사람뿐이겠는가. 서울 사람, 전라도 사람이라고 해서 어찌 그런 사람이 없겠는가.

아마도 그의 표현은 대구경북 사람들이 '싹싹하지도 않고, 사교적이지도 못하다'는 뜻이었으리라. 우리가 싹싹하거나 상냥하다고는 할 수 없는 노릇이니, 이런 점에서 대구경북 사람들이 '제낏한'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공식적인 만남이나 첫 대면에서 '제낏하게' 구는 사람을 자주 보게 된다. 낯을 가리는 성격 탓에 그럴 수도 있고, 많은 사람 중에서 밀리지 않고 주목받는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 때문일 수도 있다. 대인 불안이 있고 낯을 가리는 사람은 말문이 막히거나 긴장감 때문에 어투가 딱딱하고 대답이 짧은 경우도 있어서, 듣는 이에게는 오해의 소지를 주기도 한다. 제낏하게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원래 심성이 겸손하여 시간이 지나면 본성이 드러나고, 꿋꿋하고 변함이 없어서 인간관계가 깊고 오래갈 수 있다. 대구경북 사람들의 특성이라 하겠다.

'싹싹하지 못한' 경상도 사람들의 태도는 어찌 보면 하나의 문화적 측면이다. 무뚝뚝하게 비치는 경상도 사람들의 이면에는 천박한 가벼움을 싫어하고, 태산과 같은 신중함을 중시하며 그를 바탕으로 의리를 중시하는 문화가 있는 것이다. 다만, 그것이 배타적인 인상으로 비치는 것은 분명 문제이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 세태에서 먼저 다가가지 못하고 기다리다가 기회를 놓쳐버리거나, 그 서운함에 스스로 옹졸해질까 염려스럽다. 실제로도 대구경북은 질시로 인한 역차별 또는 변화에 대한 느린 대응으로 낙후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면이 있다. 대구경북이 스스로 먼저 변화하여야 한다는 자아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 비롯된다.

사회조직은 크게는 대륙이나 국가, 종교로부터 작게는 하나의 동네, 골목사회에서조차도 나름의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인간이 질투와 시기심 그리고 승부욕을 버리지 못하는 한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다르다는 것'에 대하여 포용하고, 좋은 점을 수용하려는 개방적인 자세이다. 개방적인 자세는 자신감에서 나온다. 자신의 의견에 대해 도전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상대방으로부터 배우려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발전은 교류에서 시작된다. 교류는 소통이다. 언어적 소통보다 비언어적인 소통의 중요성이 훨씬 크다.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대구 사람을 제낏하다고 느끼는 것은, 대구사람들이 비언어적인 소통에 서툴다는 뜻이기도 하다. 처음 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먼저 손 내밀고 미소를 지으며 고개 숙여 인사하는 것이, 늦게 트인 백 마디 말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다. 진정한 지도자의 덕목은 고요하고 유연하며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아니던가. 대구가 타지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고 또한 리더가 되려면, '제낏함'을 벗어던지고 부드러운 말과 세련된 행동을 익혀 상대방이 내게 솔깃해지게 하여야 할 것이다.

이석화/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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