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市, 이우환미술관 무산 알면서도 예산 제출 왜 했나

2개월 전 이우환 화백 '포기' 서신 받고, 의사 확인…

'만남의 미술관-이우환과 그 친구들 미술관'(이하 이우환 미술관) 건립이 공식적으로 백지화됐다. 이로써 지난 2009년 구상을 시작해 2010년 하반기부터 본격 추진되기 시작해 4년을 끌어온 이우환 미술관 건립 프로젝트가 5년여 만에 없던 일이 됐다.

▷유치 과정

이우환 미술관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2010년 11월 대구시가 이우환 화백과 건립 관련 협의를 공식화하면서다. 이듬해 2월 김범일 당시 대구시장은 직접 일본 나오시마를 방문해 이 화백과 설계자 안도 다다오를 만나 구체적 협의에 들어갔다. 그해 7월 이 화백과 안도가 대구를 방문해 건립 부지를 답사했고 2013년 2월 이우환 미술관 유치 약정서를 체결했다. 2014년 3월에는 미술관 기본 설계안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지난 6월 지방선거를 통해 권영진 시장이 취임하자 사정이 달라졌다. 권 시장은 지난 7월 이우환 미술관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발언을 해 지역 미술계는 미술관 건립을 둘러싸고 찬반 논란에 휩싸였다. 이에 따라 권 시장이 8월 10일 직접 일본을 방문, 이 화백을 면담했고 그 결과 지난 9월 11일 이 화백이 대구시청에서 이와 관련한 언론 설명회를 갖게 된 것이다.

▷이 화백의 건립 포기 결심

이 화백은 설명회 이후인 9월 29일 권영진 시장에게 보낸 자필 편지에서 "무책임하고 확신과 실천 의지가 안 보이는 대구시에 실망하여 미술관 건립을 추진할 수가 없다"며 "9월 11일 대구시청 설명회에서 시가 남의 일처럼 시민 앞에 세워놓고 미술관 건립에 대해 해명하라, 밝히라는 식으로 진행한 것은 잘못된 일이다. 또 대구시는 시민들이 나를 중상모략하고 범인 취급하게 내버려 두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대구시가 미술관 건립과 관련한 사전 설명을 하고 자신은 미술적인 부분만 설명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현장에서는 이 화백에게 대구시의 입장을 묻는 질문은 물론 이 화백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듯한 질문이 이어졌다. 이런 사정을 두고 이 화백은 "시가 떠맡아야 할 일을 나에게 떠넘겼다"며 대구시의 사과를 요구하기에 이른 것이다.

▷대구시의 대응

대구시는 12월 현재까지 총사업비 297억원 가운데 14억여원을 지출했다. 그 가운데 총 18억원에 이르는 설계비는 5억여원이 지급됐다. 앞으로 더 지급해야 할 돈이 13억원에 이른다.

이 화백의 격앙된 편지를 받고서도 대구시는 이 화백의 의중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는 판단을 하고 이 화백과의 접촉을 시도했다. 그러면서 내년도 예산안에 이우환 미술관 건립 관련 예산 48억원을 계상해 시의회에 제출했다. 다른 한편으로 대구시는 권 시장 명의로 이 화백에게 편지를 보내 작품 구입비의 구체적 내역과 참가 미술가의 명단을 10월 30일까지 밝혀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 화백은 답을 하지 않았다. 건립하지 않겠다는 편지에서 밝힌 의사에서 한 치의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대구시는 이 화백과의 전화접촉에 이어 11월 21일 시 관계자가 서울서 직접 이 화백을 만나 건립 포기 의사를 재확인하기에 이른다.

▷대구시의회의 지적

대구시의 건립 백지화 발표가 나온 2일 권영진 시장과 간담회를 가진 대구시의회 의장단과 예결위원들은 "이 화백이 미술관을 건립할 의지가 없는 것을 이 화백의 편지를 통해 분명하게 확인하고도 일방적으로 추진한다면서 시간만 한 달 이상 끌다가 백지화하겠다고 발표하는 것은 대구시 정책 추진에 큰 오점이다"고 비판했다. 의원들은 이어 "이런 상황에서 이우환 미술관 건립 예산 48억원을 그대로 제출, 백지화 발표 4일 전에 처리토록 한 것은 결코 옳은 처사가 아니며 시의회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또 대구시의 미숙한 행정이 결국 일을 그르친 것이라는 비판을 내놓았다. 이들은 공개적으로 "전임 시장 재임 시 미술관 건립에 따른 여러 가지 문제점을 시의회에서 제기했음에도 대구시가 일방적으로 추진해 오다가 문제를 더 크게 만들었다. 앞으로 대구시가 정책을 입안하여 추진하는 과정에 시민들의 신뢰가 뒷받침되어야 하고 면밀한 검토도 있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구시의 해명

대구시 정태옥 행정부시장은 2일 오후 대구시청에서 언론브리핑을 통해 "이우환 미술관 건립사업을 백지화한다"고 밝혔다. 정 부시장은 "시가 미술관 건립을 재정사업으로 하려면 총사업비를 확정해야 하는데 미술관을 건립한 뒤 전시할 작품 구입비를 확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우환 화백과 동료 작가들이 미술관에 전시할 작품 콘셉트와 비전을 확정할 수 없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며 "작가와 대구시의 의사소통에 오해와 견해차가 있었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권 시장은 "결국 백지화 결정은 모두 나의 책임이며 내가 져야 할 부담"이라면서도 "이 화백의 편지를 받고서도 직접 의사를 확인해야 한다는 판단을 했다. 그래서 담당 국장이 직접 이 화백을 만나보도록 했던 것이다. 이 화백의 최종적인 의사를 확인하고 나서는 정치권과 시의회 그리고 문화계 등 사전에 의견을 듣고 설명을 하고 양해를 구하는 절차가 필요했다. 시간을 끌거나 우왕좌왕하면서 결론을 미룬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이동관 기자 dkdk@msnet.co.kr

석민 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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