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어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야가 합의하지 못하더라도 정부 예산안을 법정 시한(12월 2일) 내에 자동 부의하도록 규정한 국회선진화법 덕분이다. 내년도 예산안이 법정 시한 내에 처리된 것은 2002년 이후 12년 만에 처음이다. 이로써 여야는 예산안의 법정 시한 내 처리라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게 됐다. 여야는 이를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법정 시한 내 처리는 헌법상의 의무이다. 가장 먼저 법을 지켜야 할 국회가 12년 동안 헌법을 위반해온 것이다.
법정 시한 내에 처리했다지만 예산안 심사가 제대로 된 것도 아니다. 헌법과 국회선진화법에서 예산안을 12월 2일까지 처리토록 규정한 것은 심도있는 심의를 하라는 의미다. 그렇게 하지 않고 법정 시한만 지킨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번 예산안 심사 과정은 이런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
심의 과정에서 누리과정(3~5세 무상 보육지원) 예산 우회 지원 규모를 놓고 새정치민주연합이 상임위를 보이콧하는 바람에 심의시간이 허비됐다. 이로 인해 여야는 11월 30일까지로 예정된 법정 심사 시한을 통과일까지 연장해 '법외 심사'를 벌였다. 이는 말 그대로 법률 규정에 없는 편법이다. 더 큰 문제는 법외 심사가 공개되지 않아 본회의 상정 전까지 새해 예산안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는 점이다. '적폐'인 '쪽지예산' 끼워넣기가 올해도 예외 없이 재연됐을 것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
예산안 처리 후 황주홍 의원 등 야당 의원이 "지역 예산 확보에 대해 청와대와 정부에 감사한다"는 기자회견까지 연 것은 그런 우려가 기우가 아님을 잘 보여준다. 물론 지역 예산 증액이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예산의 효율적 배분에 차질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합리적으로 조정되어야 한다. 쪽지예산은 이를 가로막는 대표적인 방해물이다.
이런 사실들은 예산안의 법정 시한 내 처리에 내포된 또 다른 부작용을 노출했다. 법정 시한 내 처리는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의미를 가지려면 내실(內實)있는 심사가 뒤따라야 한다. 이번 예산안 처리 과정은 예산안 처리의 '선진화'가 아직 멀었음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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