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대구에 머무른다면 걱정할 일이 하나 있다. 2016년 개장을 목표로 한창 공사 중인 대구 새 야구장에서 야구를 보는 일이다.
지금이야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 발급한 프레스 카드 덕분에 관전하기 좋은 곳에서 공짜로 야구를 볼 수 있지만, 퇴직 후엔 어찌할 도리가 없다. 때론 방법이 없을까 엉뚱한 고민도 해보지만 평범한 야구팬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사실 학교 다닐 때나 야구 전담 기자 때만큼 야구장을 찾아 경기를 보지 않지만 어쨌거나 돈 주고 야구 보는 것이 경제적으로 부담되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야구장 가기가 점점 쉽지 않아 보인다. 혼자라면 몰라도 가족 나들이나 친구들과 어울려 야구장을 찾는다면 경제적인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가끔 관중석을 돌며 야구 보러 온 사람들을 지켜보는데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 없는 것 같다. 대부분이 젊은 사람들이다. 여기에 최근 젊은 여성 관중이 가세하면서 야구장 분위기는 예전보다 더 젊어진 것 같다. 비싼 커플 석에 앉아 맥주 마시는 학생 연인을 보면 부모를 잘 만났는지,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했는지 궁금해진다.
바쁘게 사는 사람들에게 욕먹을지도 모를 이런 상념에 젖는 것은 부자 구단 삼성 라이온즈의 가난한 대구 야구팬이기 때문이다.
요즘 삼성구단의 마케팅 전략 등 살림살이를 눈여겨보면 예전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눈에 불을 켜고 돈을 벌려고 하고, 최대한 돈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 4년 연속 통합 우승을 일궈낸 김인 사장이 부임하면서부터 부쩍 심해졌다. 서울에 상주하며 홈경기가 있을 때만 대구를 찾는 그는 야구단의 자립을 강조하고 있다. 아니 그 이상이다. 삼성그룹에서 경영자로 성공한 그는 야구단에서 또 하나의 성공 모델을 꿈꾸고 있다.
25년간 대구 새 야구장의 사용 수익권을 가진 삼성구단이 앞으로 장사를 어떻게 할지 걱정이다. 삼성 측은 2만4천 석이나 되는 만큼 좌석을 차별화해 서민들이 야구 보는데 문제가 되지 않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그래도 우려하는 것은 세계적인 부자 삼성을 국내에서 살림살이가 가장 나쁜 대구시민이 응원하는 데 있다. 응원하지 않으려 해도 이미 삼성의 야구에 중독되거나 세뇌된 시민들이 많기에 하는 소리다.
기자는 삼성이 9회말 최형우의 역전 2타점 2루타로 기사회생한 한국시리즈 5차전 중계를 보면서 골수 삼성 팬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다시금 실감했다. "이제 삼성도 쓴맛을 한 번 봐야 한다. 넥센이 우승해도 좋다"는 마음으로 2승2패가 될 때까지 담담히 지켜봤으나 5차전에서 류중일 감독의 아무런 대책 없는 모습에 입에 거품을 물고 욕을 해댔다. 번번이 득점 기회를 날리면서 0대1로 끌려가자 본성이 드러난 것이다. 9회말 공격 때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삼성을 응원했다.
비단 기자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대구의 야구팬 모두가 그러했을 것이다. 욕하면서도 우승하기를 간절히 바랐고, 약발을 받아 삼성은 또 챔피언이 됐다.
최근 권영진 대구시장과 대구시민야구장에서 만난 적이 있다. 삼성이 대구체육관에서 마련한 '팬 페스티벌'을 다녀왔다는 그는 삼성의 우승을 대구시민 축하 행사로 만들지 못한 점을 아쉬워했다. 이에 기자는 "이제 부자 삼성이 뭘 해주기를 바라지 말고, 가난하더라도 대구시가 예산을 들여 축하 행사를 마련해야 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부자 삼성이 대구에 왜 인색한지 모르겠다고 평소 푸념을 일삼았기에 한편으로 낯이 뜨거웠다. 지금도 상당수 대구시민은 삼성이 돈을 들여 새 야구장을 짓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의 프로야구는 정치권의 입김이 들어간 가운데 기업의 홍보 수단으로 탄생했다. 애초부터 돈벌이로 출발한 메이저리그와는 다르다. 야구 문화가 상당히 형성된 일본과도 차이가 있다.
삼성구단이 그 차이를 고려해 대구의 시민 정서를 반영했으면 좋겠다. 야구단의 돈줄인 삼성그룹이 야구단의 돈벌이 시기를 좀 조절할 필요도 있다. 그동안 야구장의 관중 추이를 살펴보면 굴곡 있는 변화를 거듭했다. 최근 수년의 상황이라면 새 야구장에서 펼칠 삼성의 마케팅 전략이 성공하겠지만, 낙관적인 요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자 삼성과 가난한 대구 시민의 틈새가 대구의 유일한 삼성 계열사인 야구단에서만은 좁혀지길 바란다.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이재명, '선거법 2심' 재판부에 또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