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머리카락

'이것은 섬세하고 다양하며 자연스러운 보호 장치이다. 그 사회적 지위는 세계의 구석구석에서 아주 먼 옛날부터 신앙, 유행, 전통에 따라 변화되어 왔다. 모든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고 믿지만, 그 비밀은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다. 신성한 보호령의 요람이나 마법의 상징으로 출발해서, 힘의 이미지 또는 여성성의 표식을 거쳤다. 오늘날에는 일상적 손질의 대상이 되었다. 이것은 무엇일까? 바로 우리의 머리카락이다.' 머리카락을 다양한 측면에서 연구한 어느 책의 표지 글이다.

이처럼 사람의 두발을 둘러싼 관념과 습속은 세계 여러 나라의 전설과 신앙과도 결부되면서 각양각색을 연출해왔다. 영국의 서사시인 존 밀턴은 '실락원'에서 이브를 금발이 허리까지 내려오는 여자로 묘사했다. 금발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 서양인들의 통념이 반영된 결과이다.

반면에 빨간 머리는 신뢰감이 없다고 여겨 싫어했다. 질투심 때문에 동생 아벨을 살해한 카인이 적모(赤毛)였다는 구약성서의 얘기나, 예수를 배반한 유다가 빨간 머리였다는 전설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동양에서는 윤기 있는 검은 머리카락이 동경의 대상이었다. 한국에서는 시집가는 새색시의 모습을 두고 '검은 머리 은비녀에 다홍치마 어여뻐라~'고 노래할 정도였다.

머리카락은 힘과 권위의 상징이기도 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괴력의 사나이 삼손과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메가라왕 니소스의 설화가 그것이다. 조선시대에는 특히 부모에게 물려받은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을 큰 불효라 여겼다. 구한말 단발령이 내리자 차라리 목을 자르라고 저항할 정도였다. 불교에서는 머리카락을 번뇌의 다른 이름인 무명초(無明草)라 부르며 삭발의 대상으로 삼는다.

오늘날에는 헤어스타일이 한 시대를 풍미하는 형용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 개개인의 유전정보가 담긴 머리카락은 범죄현장의 주요 단서로 활용된다. 잘 썩지 않는 머리카락은 변하지 않은 사랑의 증표로 사용되기도 했다. 안동 양반가 부부의 사랑을 담은 '원이 엄마'의 한글편지와 함께 발견된 머리카락을 섞어 만든 미투리도 그렇다. 2일 전북 순창에 있는 고려시대 귀족 무덤인 농소고분에서 발굴된 청동반에 담긴 머리카락 다발은 또 어떤 애틋한 사연을 지니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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