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은 어느 해보다도 유독 '죽음'에 대해 생각하도록 하는 많은 사건들과 마주했다. 건물 붕괴 사고, 세월호 침몰 사고, 지하철'버스 사고, 화재 사고 등 무방비 상태로 받아들여야 했던 각종 재난들, 끊이지 않는 군대 내 사망 사건들과 유명인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목격하며 우리 모두는 1년 내내 충격에 시달려야 했다. 잘 먹고 잘 살자는 '웰빙', 위로하고 위안을 주자는 '힐링'에서 이제는 삶의 또 다른 모습인 죽음을 준비하자는 '웰다잉'의 문제가 진정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이건 나 자신의 죽음이건, 죽음은 어느 누구에게나 닥치는 일이다. 따라서 죽음을 준비하고 아름답게 맞이할 때 삶이 더욱 깊고 풍성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번 주에 개봉하는 휴먼 다큐멘터리 '목숨'은 바로 죽음의 문제를 바로 눈앞에서 지켜보며 이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카메라가 담는 공간은 호스피스 병동이다. 이곳에는 말기암 환자들이 입원해 있다. 남은 시간은 평균 21일. 환자들은 각자 다른 생각을 하며 이곳에 머문다. 한창때는 매우 미인이었을 두 아들의 엄마인 오십 대 김정자, 소년 같은 맑은 웃음을 짓는 사십 대 가장 박수명, 수학 교사였던 칠십 대 박진우, 가족 없이 홀로 병원에 들어온 쪽방촌 외톨이 신창열, 그들은 모두 말기암 환자이며 죽음을 코앞에 두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지만,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사뭇 다르다. 이들을 지켜보는 가족 구성원들, 담당 의사와 수녀들, 그리고 관찰자가 되어 모든 것을 지켜보는 신학생 정민영이 카메라에 담긴다.
어렵게 집을 장만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암 진단을 받고 병동에 들어온 김정자는 모든 것을 다 이루었고 삶이 행복했다고 여기며 어서 하늘로 가서 편해지고 싶어 한다. 박수명과 그의 아내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회복될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암과 싸우기로 한다. 박진우는 씩씩하고 유머가 넘치며 조금밖에 허락되지 않은 생을 진정으로 즐긴다. 따끈한 짜장면 한 그릇과 막걸리 한 모금에도 충분히 행복한 인생이다. 후두암으로 목소리를 잃은 신창열은 쉽게 짜증을 낸다.
"임종의 순간을 촬영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작업이었다. 나에게는 이 영화가 윤리적 도전이었고 줄타기였다"고 감독이 고백하듯이, 카메라에 죽음을 담는 것은 윤리적으로 몹시도 흔들리는 일이다. 살아있는 자들은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죽음의 순간은 관객에게 충격을 줄 것이며, 그러한 충격 경험은 바로 영화를 보러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참으로 잔인한 일이다. 이창재 감독은 이에 대해 "영화를 보고 놀란 마음에만 집중하지 말고 놀란 마음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돌아가길 바란다"고 당부한다.
베테랑 의사는 남은 생을 병과 싸울 것인지, 아니면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제대로 살 것인지의 중대한 선택을 환자 스스로 할 것을 분명하게 말한다. 누구나 죽음을 향해 걸어가며 삶을 살아간다. 제각각 자신의 병과 죽음에 대해 다르게 행동하는 이들을 지켜보며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죽음에 대한 철학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신학생 정민영은 신에 대한 확신을 내리기 전, 호스피스 병동으로 들어와서 삶의 진정한 본질을 깨닫고자 했다. 명랑하고 넉넉한 그는 노인들의 친구가 되었으며, 깐깐하고 외로운 신창열에게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었다. 죽음으로 한 생이 마무리되고 병동은 또 다른 손님을 맞이해야 할 때, 정민영은 더 고단하고 힘겨운 삶을 경험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그의 젊음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이들에게 위안과 행복감을 주었다. 영화 속 관찰자이지만 영화 밖의 우리 자신과 같은 진정한 관찰자인 그가 바깥세상으로 여정을 떠난다. 그리고 여행을 끝낸 후 그의 삶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무당 이해경의 삶을 담담한 시선으로 조명한 다큐멘터리 '사이에서', 비구니들의 일상과 수행을 담은 '길 위에서', 그리고 '목숨'까지 이창재 감독의 다큐멘터리 스토리텔링과 카메라 스타일은 점점 완숙해지고 있다. 영화는 눈물이 마르지 않는 신파 인간극장이 아니라, 거리를 두고서 성찰하도록 이끌어내는 성숙한 휴먼 다큐멘터리다운 태도를 지녔다. 이로 인해 죽음, 아니 삶의 인문학적 가치가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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