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해동학혁명 민란으로 폄훼 안타까워"

영덕 향토사학자 이완섭 씨

영덕의 향토사학자 이완섭(53'전 영덕문화원 사무국장) 씨는 영해동학혁명에 대한 질문에 아쉬움을 피력했다.

"동학 2대 교주 해월 선생에게 수운 최제우 선생의 신원을 이유로 거사를 제안했던 이필제 장군은 여러 연구에서 볼때 다소 모험주의적인 인물로 볼 수 있다. 당시로는 그만큼 동학의 역량이 무르익지 않았음에도 거사를 단행해 결과적으로 영해'영덕 지역의 동학에 대한 탄압을 가속화시켰다."

하지만 이 전 국장은 영해동학혁명이 단순한 민란으로 폄훼하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20여년 뒤 갑오농민혁명과 같은 형태는 아니지만 영해동학봉기는 적절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왕조시대에 '인간의 자존'을 외치며 그많은 사람들이 떨쳐 나섰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러한 시도들과 교훈이 있었기에 동학이 더 성장할 수 있었다."

그는 또 영해동학혁명의 주축이 된 세력들에 대한 분석도 내놨다. "1840년대 영해항교의 자리를 놓고 서얼과 적자들이 심각하게 대립했다. 당시 부사가 처음에는 서얼의 손을 들어줬다가 다시 적자들의 편을 들었다. 이후 두 세력 간의 반목이 심해졌으며 서얼과 함께 몰락한 지식인들은 기존 질서에 반감을 가지고 동학에 흡수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 전 국장은 마지막으로 영덕의 자부심을 피력했다. "영해는 고려왕조 시절 3명의 시중을 배출한 유서 깊은 곳이다. 또한 병곡면에 거무역리(居無役里)가 있는데 이 지명은 고려말 공민왕 때 지어진 이름으로 공역이 없는 지역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아주 작은 예지만 영덕은 역사 스토리가 곳곳에 있는 자랑스러운 곳이다." 영덕 김대호 기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