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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의 생각] 키덜트 취재 후기-추억엔 우열이 없다

지난달 8일 자 매일신문 9~11면은 '키덜트 문화'를 다뤘다. 어른이지만 여전히 어린 시절의 감성을 잊지 못하는 '키덜트'들을 만나다 보니 기자도 어린 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기분이 좋았다. 고백하자면 기자도 '키덜트'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기자는 만화 '톰과 제리'를 좋아하는데, 가끔 주말에 케이블 TV의 만화채널에서 그때의 단편들이 방송될 때면 넋을 놓은 채 TV를 본다. 그 모습을 본 어머니가 "네가 무슨 초등학생이냐"고 한마디 하시지만 말이다.

기자가 어릴 때 살던 곳은 기자가 태어난 해에 준공을 해 기자와 같이 나이를 먹어가던 5층짜리 아파트였다. 그곳에서 기자는 20년 넘게 살면서 초'중'고교와 대학 공부까지 다 마쳤다. 그렇다 보니 추억도 꽤 많다. 비 온 다음 날 모래사장에 물이 고여 웅덩이가 만들어지면 모종삽 하나 들고 가서 수로와 댐을 만들며 놀았고, 집 근처 문방구에서 팔던 200원짜리 스티로폼 모형 비행기를 날리며 '누가누가 더 멀리 나가나' 친구들과 내기를 붙기도 했다. 기자가 '톰과 제리'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당시 매일 오후 5시 40분 지상파 TV에서 틀어주던 만화 중에 '톰과 제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톰과 제리'가 끝난 이후에 채널을 돌리면 '지구용사 선가드' '달의 요정 세일러문'과 같은 만화가 계속 나왔다.

지금의 젊은 세대가 산과 강에서 뛰어논 경험은 이전 세대보다 훨씬 적지만, 어차피 도시에서 커 왔던 이들에게는 '산과 강에서 뛰어논다'는 개념이 재미있는지 아닌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어르신들 생각처럼 우리가 도시에서 놀았다는 사실이 재미없지는 않았다. 노래방에서 어떤 용감한 녀석이 '무지개 다리 넘고 가고 싶어도~'로 시작되는 '지구용사 선가드'의 주제가를 부르기 시작하면 "아직도 애냐"고 비웃다가도 마지막에는 대동단결해 합창을 하며 끝내기 마련이다. 그 만화영화를 아주 재미있게 봤던 그런 것들이 우리한테는 추억인 거다. 게다가 '키덜트'들처럼 우리의 추억은 비록 장사치의 전략일지언정 공산품으로 재현이 가능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더 행복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다.

자신의 어린 날에 빗대 "요즘 애들은 추억이 없다"라고 불쌍하게 여기는 분들에게 굳이 한 말씀을 드리자면, 어릴 때 뛰어놀던 산과 강이 있던 자리에 개발과 근대화를 이유로 건물을 세우고, 어린 시절 놀던 놀이터의 모래사장을 "세균 감염으로 인한 건강 악화가 우려된다"며 우레탄 블록을 깐 사람들은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이라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자신이 처한 환경을 바꿀 능력이 없기에 아마 그런 환경에 알아서 잘 적응하며 다른 추억을 만들 것이다. 어차피 추억에는 우열이 없기 때문에 지금의 아이들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최대한 재미있게 놀았던 추억을 최고로 여길 것이다. 지금의 아이들이 "자연에 대한 추억이 없다"고 불쌍하게 여기는 어른이라면 혀를 찰 시간에 먼저 놀이터의 우레탄 바닥을 뜯어내고 모래사장을 만들어 주는 게 먼저 할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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