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블리비언(Oblivion), 그리고 망각에 대한 단상'.
이제 갓 서른을 넘긴 내가 할 소리는 아니지만, 세월이 참 빠른 것 같다. 벌써 해가 저물기 때문이다. 1할도 채 남지 않은 올해, 돌이켜보면 가장 다사다난한 해였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시간이라 아직 망각하지 못한 일들이 더 선명하게 남아있기도 해서지만,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실제로 어려움이 많았던 해이기도 해서다.
좋지 못했던 기억은 빨리 잊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짓궂게도 '망각'하려 할수록 더욱 '생각' 나게 되는 것이 사람 심리인 것 같다. 망각에 있어서만큼은 노력이란 말이 그저 무색해진다. 오히려 부질없음에 방심한 채 세월을 흘려보낼 때 비로소 망각에 성공하게 되는 것을 살면서 더 많이 느끼게 된다. 아스트로 피아졸라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인간의 행위에는 망각이 필요하게 마련이다. 살아 숨 쉬는 유기체의 생명에는 망각이 필요하다. 모든 것이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내 기억 속에 묻혀 잊히는 것뿐이다. 나를 기억에 묻고 너를 그 위에 다시 묻는다."
'잊어야 한다면 잊혀지면 좋겠어. 부질없는 아픔과 이별할 수 있도록.'
고(故) 김광석의 '그날들'이나 김소월의 시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와 결을 같이하는 피아졸라의 명곡 '오블리비언'. 우리에게 '망각'이라는 제목으로도 유명한 곡이다.
이 곡은 피아졸라가 1984년에 완성한 곡으로 처음에는 영화감독 마르코 벨로치오 감독이 제작한 영화 '엔리코 4세'의 배경음악으로 작곡되었다. 이후에 여러 영화와 드라마, 또 광고음악으로 널리 사용되면서 대중적으로 더 인기를 얻게 되었다.
지난 편에 '아디오스 노니노'를 설명하면서 피겨여왕 김연아의 피날레 무대를 잠시 언급했다. 가히 피겨여왕의 풍모로 깊은 인상을 심어준 그녀의 무대를 아마 나는 망각하지 못할 것 같다. 이와는 다르게 인상 깊은 무대를 보여준 이가 있었으니 바로 러시아 피겨선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 양손에 천을 오브제로 사용해 몸개그(?)를 보여준 그녀의 특별한 갈라쇼도 망각하지 못할 거 같은데 그때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음악도 바로 이 곡이다.
아마 그녀 또한 이날의 갈라쇼를 망각하지 못할진대 이렇듯 이불을 덮고 누웠을 때 부끄러웠거나 화가 난 기억이 떠올라 이불을 차는 행동을 요즘 젊은이들은 시쳇말로 이불킥(?)이라고 한다. 여기에 슬픈 감정까지 추가해서 우리는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하게 되는데 피아졸라가 말한 것처럼 망각이 필요한 순간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누군가는 망각을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라 한다. 만약 우리가 모든 것을 잊어버리지 못하고 오롯이 기억하고 산다면 과부하로 인해 머리가 터져나갈지도 모른다. 적당히 잊어야 살 수 있다. 그래서 망각은 어떻게 보면 오히려 축복이다. 그리고 어떤 상처도 세월이 가면 조금씩 아문다. 피아졸라도 세월이 약이라는 생각을 했나 보다.
이예진(공연기획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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