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전성기라고 할 만하다. 1995년 '모래시계'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았던 배우 이정재(41)는 청춘 스타였다. 영화 '시월애'(2000), '인터뷰'(2000), '오 브라더스'(2003) 등의 작품에도 출연하며 승승장구했다. 계속 사랑받을 것 같았던 그는 한동안 잠잠했다. 휴식기라면 휴식기이고, 슬럼프였다면 슬럼프다. 하지만 이정재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종횡무진 활동하고 있다. 최근 '도둑들'(2012), '신세계'(2013), '관상'(2013) 등 관객의 사랑을 엄청나게 받은 작품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본인은 관객이 이정재를 사랑하는 이유를 뭐라고 생각할까?
"저보다 작품을 사랑하는 거겠죠.(웃음) 운이 좋게도 좋은 작품을 제안받은 거니 모두에게 감사해요. 개인적으로 영화 '하녀' 때부터 슬럼프를 잘 빠져나온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임상수 감독님과의 만남도 즐거웠고, 최동훈 감독님이 '도둑들' 출연을 제안했을 때도 반가운 역할이라 좋았죠. 김용화 감독님 집들이에 갔을 때, 최 감독님이 '다음 작품이 뭐가 될지 모르겠지만 같이 하면 좋겠다'고 하셨거든요. '신세계'는 (최)민식이 형이 전화해서 함께하게 된 것이고, '관상'도 한재림 감독님이 불러주셨죠. '빅매치'는 제작사 심보경 대표님이 더 적극 추천해주신 작품이고요."
지난달 26일 개봉한 영화 '빅매치'(감독 최호)로 돌아온 그는 한층 더 밝아 보였다. 몸과 마음이 고된 영화였을 텐데 자기 만족도가 높기 때문이리라. 이정재는 극 중 수갑이 채워진 채로 몸을 날려 10여 명의 형사를 따돌려야 했고, 쉴 틈 없이 달렸다. 또 20여 명의 조폭과 대결하는 등 시종 달리고 구르고 싸워야 했다. 천재 악당 에이스(신하균)에게 납치된 형(이성민)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익호(이정재)의 모습이 고스란히 영화에 담겼다. 이정재는 속편이 나와도 좋을 결말이라고 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속편은 출연 못 한다"고 재차 강조하면서다.
촬영 5개월 전부터 운동과 훈련을 했다는 이정재는 "이제 나이가 들어 근육이 잘 안 붙어 몸 만드는 게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빅매치'는 몸을 만들지 않았으면 촬영하기 힘들었을 작업이었을 것 같다는 게 영화를 통해 온전히 드러난다. 몸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환상적인 복근과 몸매를 만들어낸 이정재. 정말 독하고 대단하다고 했더니 "더 이상은 건장한 몸을 보여드리는 역할은 못 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아쉽지 않게 연기하려고 노력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또 "카메라가 돌아가면 없던 힘도 나고, 안 움직이던 어깨도 더 잘 돌리게 되더라"고 웃었다.
오히려 촬영이 지연된 게 힘들었다. 감독이 시나리오를 고치는 과정이 몇 차례 있었는데, 이정재는 영화 속 몸을 유지해야 해 운동과 훈련을 쉴 수 없었기 때문이다. 탄탄한 몸을 만들어야 했으니 감독도 이정재의 몸과 액션을 더 사용(?)하려고 뭔가를 요구했을 것 같다. 잘 나온 장면도 한 번 더 찍거나 하는 등으로 이정재를 괴롭히지는 않았을까.
이정재는 "감독님은 액션보다는 코믹한 부분에 신경을 더 많이 쓰더라"고 답했다. "사실 감독님이 액션은 원하는 게 없었어요. 액션은 카메라 포지션과 인물과 각도, 방향성만 맞으면 그럴듯해 보이거든요. 하지만 코믹적인 요소는 아이디어도 내야 하고, 그 포인트 호흡이 맞았을 때가 웃기거든요. 될 때까지 찍어야 했죠."(웃음)
이정재가 언급한 건 링 위에서 코믹한 세레모니를 한 장면이나 유치장에서 "이거 몰래 카메라야?"라고 하는 장면, 수경(보아)과의 갈대숲에서 싸움이 애정행각으로 오해받는 장면 등이다. "내겐 코믹적인 재능이 없다"는 그는 "영화에 어느 정도 밝은 톤을 주는 정도는 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딱 영화에 나오는 정도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나머지는 다른 분들이 큰 웃음을 주는 연기를 잘 해주셔서 균형이 맞지 않을까 한다"고 짚었다.
몸과 마음이 고생했으니 세트에서 나름 편안하게(?) 연기한 신하균의 에이스 역할이 부럽기도 했을 것 같다. 신하균은 전체 5개월 중 2주 정도만의 촬영으로 끝이었으니, 이 점도 부러웠을 것 같다. "신하균 씨는 세트에서 촬영하고 짧게 끝났으니 편하긴 했겠죠. 하지만 제가 맡았으면 신하균 씨의 에이스처럼 못했을 것 같아요. 그 역할 연기는 해냈겠지만, 아마 다르게 나오지 않았을까요?"
최근 다양한 소재와 장르의 작품에 참여했지만 이정재의 멜로 '시월애'를 기억하는 팬들도 많다. 여전히 그의 멜로를 기다리고 있는 팬들도 많다. 하지만 요즘 그는 멜로 출연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다.
이정재는 "멜로 영화 시나리오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지만 요즘 내게는 출연 제의가 없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요즘 관객은 멜로나 로맨스 영화를 안 보는 것 같다. 최근 들어 멜로에 관심이 많아지게 돼 '인간중독'이나 '마담뺑덕' 등도 봤는데, 생각만큼 관객들이 극장에서 안 봤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수위 높은 영화도 포함한) 멜로에 대한 관심을 표하며 "벗는 것에 대한 불편함은 크지 않다. 스토리와 노출이 잘 맞는다면 참여해보면 좋겠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멜로에 관심이 생겼으면 연애, 결혼을 생각할 법도 하다. 이정재는 "혼자 사는 게 익숙해졌고, 편안한 것도 있다"고 했다. "과거에는 이성이 옆에 항상 있어야지 좋고, 뭔가가 잘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어요. 지금은 여자친구는 항상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다지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드네요."(웃음)
'빅매치'는 가수 출신 보아의 한국영화 데뷔작이기도 하다. 익호의 조력자가 된 빨간천사 수경 역의 보아와 이정재의 호흡이 은근히 좋다. 이정재는 "사실 3초 정도 갸우뚱했다"고 고백했다. "처음에 수경 캐릭터를 맡은 배우에 대해 듣고, '우리가 아는 그 가수 보아?'라는 반응을 보이며 놀랐다"고 한 그는 이내 이 캐스팅에 수긍했다. "운동을 오래하며 챔피언 꿈을 가진 선수가 노력한 시간과 보아가 어렸을 때 가수로 꿈을 꾸며 연습하고 노력한 시간과 느낌이 비슷할 것 같았다"며 "수경의 느낌을 잘 표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잘했다"고 칭찬했다. 특히 이정재는 "수경이 담배를 피우고, 침을 뱉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고 후배를 추어올렸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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