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40년간 바느질 외길 인생…국내 유일한 '누비장' 김해자 씨

바늘땀 간격 2.8mm 정성…"누비는 민족정신의 산물"

'김해자 누비전'이 열린 지난달 자신의 누비작품 앞에 선 '누비장' 김해자 씨.

'너는 미묘한 품질과 특별한 재치를 가졌으니, 물중의 명물이요, 철중의 쟁쟁(錚錚)이라. 민첩하고 날래기는 백대의 협객이요, 굳세고 곧기는 만고의 충절이라. 추호 같은 부리는 말하는 듯하고, 두렷한 귀는 소리를 듣는 듯한지라. 능라와 비단에 난봉(鸞鳳)과 공작을 수놓을 제, 그 민첩하고 신기함은 귀신이 돕는 듯하니, 어찌 인력이 미칠 바리오.'

조선 순조 때 미망인 유씨 부인이 부러진 바늘에 대해 그 안타까운 심정을 제문형식으로 읊은 국문체 고전수필 '조침문' 중 일부다. 굳이 조선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가까운 과거, 우리네 어머니와 할머니들 삶에서도 '세요각시'(바늘)는 '규중칠우'(閨中七友) 중 으뜸이었다.

모든 게 기계화되고 일회용이 넘쳐나는 요즘, 바늘과 함께 바느질을 업으로 삼아온 '누비장' 김해자(63) 씨의 삶 또한 협객과 충절의 표상에 못지않다. 누비는 두 겹의 옷감을 포개놓고 줄지어 규칙적으로 반복해서 바늘로 한 땀 한 땀 누벼 옷을 짓는 우리나라 전통 재봉법.

"20대 초반 한복을 지으면서 우연히 누비 승복을 본 후 누비의 매력에 홀딱 빠졌죠. 그러던 중 대한제국 침방 나인으로부터 구전으로 전해진 누비기법을 알고 있던 스님을 찾아 3개월 정도 누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후 20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누비에 몰두하게 된 것 같아요."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제대로 된 전통 누비옷 제작은 그 맥이 끊어진 상태였다. 김 씨는 더 나은 누비옷 제작을 위해 전통 복식과 장신구 등을 전시한 단국대 '석주선 기념박물관'을 찾아 유물을 스승 삼아 정진한 결과, 80년대 중반에 유물 114호인 전통 누비옷 '옆액주름포'를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유물의 바느질 땀 간격은 3㎜. 하지만 김 씨는 땀 간격을 2.8㎜까지 누빌 수 있다.

"누비옷은 우리 민족 정신세계의 하나인 정성의 산물입니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할 뿐 아니라 누비를 기울 땐 입는 사람의 무병장수, 여의 성취, 만수무강 등을 비는 믿음을 갖고 짓습니다."

김 씨에 따르면 누비작업은 지극히 단순하다. 그렇게 때문에 자기성찰과 남을 위해 공을 들이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누비바느질을 할 때는 온갖 잡념을 끊고 오직 멋진 작품이 완성되는 그 시간만을 목표로 정진할 따름이다. 잡념을 걷어낼 수 있는 힘이 누비에 있기에 그는 "지금 시대에 누비바느질이 오히려 잊혀가는 민족 고유의 감성지수를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일까. 그는 작업을 하다 보면 어떤 때는 땀 간격 2.8㎜가 오히려 넓어 보일 때도 있다고 했다. 사람이 지닌 무한계발가능성을 그는 누비에서 본 것이다.

"그동안 누비로 내가 밥을 먹고 살았기 때문에 내 옷을 사주는 사람에게 늘 고마운 생각이 듭니다. 누비를 하면 집착이 없어져 마음은 한량없이 편해지죠."

인류가 태동한 이래 옷을 입으려면 옷감을 엮어 매지 않으면 안 되었다. 누비의 시초는 이렇듯 인류의 의복문명의 열림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이 때문에 김 씨는 그의 누비법 복원을 그만의 재산으로 여기지 않았다. 지난 20여 년간 그를 찾아 누비를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그는 아낌없이 기술을 전수했다.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제107호로 국내 유일무이한 '누비장'인 그는 육순을 넘기고서도 비우고 비워낸 마음의 끝자락을 바늘을 통해 손끝으로 옮겨내고 있다. 그 결과물들이 지난달 25일부터 30일까지 대백프라자 12층에서 '김해자 누비전'이란 이름으로 일반인들에게 선을 보였다.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이를 꺼릴 뿐이죠. 많은 사람들이 이 누비법을 계속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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