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그레타와 로텐

존 카니 감독의 영화 '비긴 어게인'에 주인공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가 한물간 프로듀서 댄(마크 러팔로)의 딸 바이올렛에게 옷차림에 대해 충고하는 장면이 나온다. "네 옷차림이 매우 섹시하기는 한데, 상상할 여지를 거의 남겨놓지 않는 부분은 별로야~"라는 대사다.

착 달라붙는 짧은 치마에다 하이힐 때문에 걷기조차 힘들어 보이는 사춘기 소녀의 차림은 한마디로 가관이다. 바이올렛의 이런 옷차림은 직장에서 해고되고 가족과의 관계마저 불편한 무능한 아빠에 대한 10대 딸의 반항을 암시하는 설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감독은 그레타를 통해 뒤틀린 아빠와 딸의 관계를 풀어나간다. 진심 어린 충고에 바이올렛은 이내 자신을 되돌아보고 하나씩 고쳐나가는데, 그레타의 소통 능력과 화법이 매우 성숙하다.

며칠 전 오바마 대통령의 두 딸 옷차림에 대해 신랄하게 비난한 공화당 하원의원의 보좌관이 여론에 밀려 결국 사임했다는 보도다. 로텐이라는 이 여성보좌관은 며칠 전 추수감사절 칠면조 사면행사에 나온 말리아와 사샤의 옷차림과 태도를 지적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무례한 화법과 매너가 화근이었다. 그는 오바마 두 딸의 짧은 치마를 거론하며 "술집에서나 입을 옷이 아니라 존경받아 마땅한 옷을 입으라"며 "백악관에 산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제대로 인식하고 경우에 맞게 행동하라"고 꾸짖었다.

그런데 입을 대더라도 그 방식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옷차림을 구실로 비난의 화살을 대통령에게 겨냥하는 비매너가 부각된 것이다. 대통령의 자식에 대한 비난이 금기인지 아닌지를 떠나 상대를 비난해도 대상과 때를 가려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킨 점에서 미국사회의 성숙도를 말해준다. 이에 비하면 시도 때도 없이 막말'욕설을 퍼붓는 우리 정치판이나 이를 거드는 시민사회는 매너랄 것도 없다.

삼성그룹이 이달부터 '글로벌 매너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는 뉴스다. 식사모임이나 회의 때 테이블에 전화기를 올려놓는 등 옳지 않은 매너를 고치자는 것인데 수긍되는 대목이 많다. 이재용 부회장이 임원들과 외국 손님을 접대하다가 매너에 어긋나는 행동들을 보고 캠페인을 주도했다는 말도 들린다. 한 사회나 집단의 성숙도를 재는 척도는 지식과 학력, 재력이 아니다. 말과 행동에서 교양과 품격이 보이지 않는다면 누가 일류로 대접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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