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기대수명이 또 늘었다니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아이라면 평균 81.9년을 살게 된다는 통계청 조사 결과가 나왔다. 1970년에 태어난 아이의 평균 기대수명이 61.9년이었으니 40여 년 만에 기대수명이 20년 이상 늘었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아이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80.2년보다 1.7년이나 오래 살기를 기대해도 좋다고 한다.

평균 기대수명이 쑥쑥 늘고 있으니 마냥 즐거워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걱정이 앞선다.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이 과연 길어진 노후를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다.

우리나라가 초저출산국에 이름을 올린 것은 벌써 10여 년 전이다. 2001년 55만 5천 명이던 신생아 수는 2002년 49만 2천 명으로 급전직하했다. 신생아 수가 50만 명 밑으로 떨어진 것도 처음이었지만 감소 속도가 너무 가팔랐다. 출산율은 1.3에서 1.17로 하락했다. 정부는 깜짝 놀랐다. 2001년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신생아 수) 1.3명만 하더라도 일본의 1.33명보다 낮은 수준이었으니 정부가 놀란 것은 당연하다.

부랴부랴 출산장려 정책 마련을 위한 대책회의가 열렸다. 하지만 아무런 대책도 없었다. 그냥 더 지켜보자는 것이 대책이라면 대책이었다. 출산지원금이나 보육비 지원을 늘려봐야 보조금을 노린 일부 계층의 악용가능성만 커지지 중산층의 출산율은 높아지지 않는다는 결론을 맺었다. 정부는 실기했다. 몇 년을 그냥 흘려보냈다. 당시 선진국에서 저출산은 단골 이슈였지만 1998년 OECD에 가입한 우리나라는 유럽에서 저출산 대책이 한창 논의될 때 그것이 왜 이슈가 되는지조차 몰랐다.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출산율은 급격히 떨어졌다. 2005년엔 1.08명으로 바닥을 헤맸다. 그 해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아이는 43만 5천 명에 불과했다.

정작 우리나라의 초저출산을 경고하고 나선 것은 영국의 인구학자 데이빗 콜먼이었다. 옥스퍼드대학 교수인 그는 2002년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코리아 신드롬'으로 규정하면서 한국을 인구소멸국가 1호로 지목했다.

뒤늦게 저출산 문제를 인식한 정부가 돈을 쏟아 붓고 있다. 2005년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법'을 제정한 후 이듬해 2조 1천억 원을 투입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는 14조 9천억 원을 썼다. 9년 동안 저출산 해소를 이유로 사용한 예산은 66조 원에 이른다.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초저출산의 덫에서 벗어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출산율은 2001년 이후 13년 동안 단 한 차례도 1.3명을 넘어서지 못했다. 지난해 출산율 역시 1.19명에 불과했다.

정부의 저출산 정책 10년은 누가 봐도 실패다. 현재 추세라면 태어나는 아이들이 80 노인이 될 시점이면 우리나라 인구는 3천만 명으로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대한민국 국회가 진단했다. 120년 후면 우리나라 인구는 1천만 명으로 쪼그라들고 2256년이면 인구 100만 명의 유명무실한 국가가 된다. 현재의 초저출산이 유지된다는 전제 아래 나온 진단인데 정부의 저출산 대책은 실효성이 없으니 개연성이 상당한 시나리오다.

인구 정책에 실패한 나라의 미래가 밝을 리 없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고 부양받는 노인의 한숨만 늘어나는 나라의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지금은 노인 1명을 위해 청년 7명이 세금을 낸다. 하지만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이 한창 일할 30대 중반이 될 때쯤이면 노인 1명을 위해 청년 1.5명이 세금을 내야 한다. 우리 세대가 아이를 낳지 않으므로 인해 미래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지고 가야 할 짊은 더 무겁고 커지는 악순환이 된다. 세금 낼 아이는 큰 폭으로 줄어드는데 연금은 '이대로'를 외치는 것도 볼썽사납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정부나 국민이나 저출산에 대한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그동안 정부의 저출산 대책은 결혼가정의 출산 후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결혼을 장려하고 초혼 연령도 낮추는 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여성들이 결혼 적령기에 결혼해 육아에 나설 수 있는 사회적 토양을 만들어주는 사전 대책이 출산 후 육아 지원에 초점을 맞춘 사후 대책보다 효과적이다.

'낳지 않고 늙어 죽어가는 종은 멸종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평범한 진리다. 수명이 늘었다는 소식에 진정 샴페인을 터뜨릴 수 있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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