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선교사 리처드 헨리 사이드보텀이 아내 에피의 피아노를 낙동강 사문진나루터를 통해 들여온 지 100여 년이 지났다. 사문진은 대한민국 피아노의 '효시'이자 '고향'이 됐다. 나아가 달성군은 사문진의 피아노에 스토리를 입히고 콘텐츠화해 새로운 문화상품으로 재탄생시켰다.
'100대 피아노 콘서트'와 뮤지컬 '귀신통 납시오' 등이 바로 그것이다. 피아노는 사문진의 주막촌, 유람선과 함께 '대박 이벤트'로 확실히 자리를 굳혔다. 달성군은 지난 10월 3, 4일 사문진에서 '100대 피아노 콘서트'를 가졌다. 달성문화재단이 주관한 피아노 공연은 우리나라에 피아노가 최초로 들어왔던 역사적 사실을 조명해 올해로 3년째 열렸다.
◆피아니스트 임동창 만나 100대 콘서트 첫 아이디어
우선 100대의 피아노가 콘서트에 동원된다는 사실이 해가 갈수록 재미를 더하고 있다. 처음부터 피아노 100대가 무대에 올려진 것은 아니었다. 제1회 때인 2012년도에는 99대로 시작됐다. 지난해 달성군 개청 100년을 기념해 상징적으로 100대의 피아노로 맞추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100대 피아노 콘서트'로 굳혀졌고, 매년 가을 연례행사로 진행된다.
사문진 100대 피아노 콘서트는 김채한 달성문화재단 대표가 우연한 기회에 풍류 피아니스트인 임동창 씨를 만나면서부터 시작된다. 임 씨가 임하댐 수몰지역 근처를 지나다가 스러져가는 고택을 보게 된다. 임 씨는 고택에 깃들어 있는 성주신을 위로하는 차원으로 '성주풀이' 공연을 기획했고, 이 자리에 김 대표가 초대된 것이다. 임 씨의 피아노 공연을 지켜본 김 대표는 '바로 이것이다. 사문진이 지닌 피아노의 역사성에 피아니스트인 임 씨의 예술성을 접목하면 물건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고 했다.
얼마 후 김 대표는 무작정 임 씨를 찾아나섰다. 전국을 무대로 떠돌아다니는 임 씨가 남원에 있다는 사실을 수소문 끝에 접하고 그곳으로 곧장 달려갔다.
김 대표는 먼저 안동 공연을 화두로 꺼내면서 사문진을 통해 우리나라에 피아노가 최초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임 씨는 자신이 피아니스트이지만 '정말 몰랐다'는 표정으로 김 대표의 얘기를 들어줬다. 이어서 사문진에서의 '100대 피아노 콘서트'를 제안했다. 임 씨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임에 따라 김 대표는 거의 반은 성사된 것으로 믿고 돌아왔다.
◆100대 피아노 화음 맞추기 위해 피나는 연습
그러나 워낙 큰 예산이 수반되는 음악행사라 김 대표 혼자서 결정할 사안이 아니었다. 김 대표는 김문오 군수에게 그간의 진행과정과 행사개요를 보고하고 김 군수의 재가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 김 군수의 경우 방송 언론계 출신으로 '문화가 밥이다'라는 지론을 가질 정도로 문화예술에 대한 감각과 쏟는 애정이 남다르다.
예상대로 김 군수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이로써 100대의 피아노 선율이 낙동강 사문진에 울려 퍼지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말이 쉽지 피아노 10대도 아니고 100대가 동시에 화음을 맞추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100명의 피아노 연주자들은 집음기(集音機)를 통해 지휘자가 보내오는 신호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등 실제 공연에서의 혼연일체를 위해 피나는 연습을 했다.
콘서트의 총지휘는 임 씨가 맡았다. 100명의 연주자들은 임 씨가 행사 두 달 전부터 시작되는 공개 오디션을 통해 직접 뽑는다. 뽑힌 연주자들은 고등학생부터 시작해 대학생, 기업체 직원, 주부 등 각양각색이다. 오디션 과정도 치열하다. 약간의 실수로 떨어진 학생은 그 자리에서 엉엉 울면서 재심을 요청해 보지만 어쩔 수 없다. 대신 합격한 연주자들은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 피아노의 대가인 임 씨로부터 실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여기다 100대 피아노 콘서트의 연주자라는 스펙이 따라붙게 돼 자부심도 가진다. 어느 날인가 연주자들이 지휘자의 지도에 따라 연습이 한창일 때 김 군수와 군의회 의원들이 현장을 방문했다. 한 군의원은 연습에 집중하고 있던 한 여성 연주자를 불러내 김 군수와 지휘자 임 씨에게 자랑스러운 듯 소개시켰다. 이 군의원은 "내 며느리다. 오디션을 통해 당당히 뽑혔다"고 했다.
◆지역 문화의 큰 자산, 100대 콘서트
100대의 피아노와 100명의 연주자가 올라가야 하는 무대도 초매머드급이다. 무대의 가로 길이가 60m, 세로는 15m에 달한다. 통상 콘서트 공연장의 2~3배 규모다. 무거운 하중을 고려해 철골 구조로 웅장하고, 튼튼하게 지어졌다.
올해 공연에는 대형인 그랜드 피아노 5대와 나머지 95대는 일반 피아노로 채워졌다. 대부분 대구 대명동 양지로의 악기골목에서 온 것이다. 계명악기사를 운영하는 이재철 대표는 "피아노 골목에서 영업을 하는 4~6곳의 가게에서 각각 20~25대 정도씩 나눠 공급하게 됐다"며 "대구 지역에서 이 같은 피아노 콘서트가 열린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자산"이라고 했다.
지난해 100대 피아노 콘서트에서 지휘자 임 씨는 자신이 손수 작사'작곡한 '달성 아리랑'을 달성군에 선물했다. 8분의 6박자로 아주 경쾌한 굿거리장단과 휘모리장단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임 씨는 "본인이 만든 달성 아리랑 노래 속에 달성군의 빛나는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군민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불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달성군의 문화를 주체적으로 창조하고 공유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는 달성문화재단은 올해로 출범 4년여 만에 내로라하는 문화단체를 물리치고 지역 문화예술계에서 최고의 영예로 꼽히는 '금복문화상'을 수상했다. 달성문화재단은 김 군수의 선거 공약에 따라 설립된 지역의 문화예술기관으로 이번 금복문화상 수상은 그간의 뛰어난 역량을 인정받은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김 군수와 달성문화재단의 문화정책에 대해 불만을 품은 세력들의 어깃장이 대단했다. 심지어 김 군수가 무소속 시절에는 군의회가 문화재단이 신청한 당초 예산 32억원 가운데 78%인 무려 25억원을 삭감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당시 군의원들은 문화재단 직원들의 인건비를 제외하고 나머지 재단적립금과 각종 문화사업과 관련된 예산을 거의 깎아 버린 것. 게다가 지난 지방선거 당시에는 누군가 달성문화재단과 관련해 사업비 부당 지출 등 아무런 근거 없는 내용을 경찰에 투서하는 바람에 애꿎은 관련 부서 직원들이 골탕을 먹기도 했다.
달성 김성우 기자 swki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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