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안동차전놀이와 웅도경북 신청사 개청

경상북도 개도 700주년과 신도청시대 개막을 앞두고 향토 전통문화의 우수성과 역동성을 부각시켜 웅도경북의 긍지와 자부심을 새 시대에 걸맞게 새롭게 승화시켜 보자는 새 문화 바람이 고조되고 있다.

신도청이 자리 잡는 안동권은 약 1천 년 전 고려시대 때 대도호부로서 지역의 중심지였다. 이제 그 안동에 경상북도청이 옮겨 오면서 안동으로 보면 다시 천 년 전의 역사적인 역할을 맡게 된 셈이다.

안동의 도시 역사 시작은 후삼국시대이다. 당시 신라를 멸망시키고 파죽지세로 세력을 확장하던 후백제 견훤의 공격을 받아 고려 태조 왕건은 팔공산 전투에서 대패하고 영천, 의성에서 안동 방면으로 후퇴를 거듭한다. 당시 안동 성주였던 김선평과 형관 권행, 호족 장길의 지원을 받은 왕건은 고창전투(안동의 옛지명'927)에서 견훤을 물리치고 전황을 극적으로 반전시킨다. 이 전승은 왕건이 삼국통일을 이루는 계기가 됐다. 왕건은 후일 안동지역 장수 3명에게 벽상공신인 태사(정1품)로 봉하고 본관을 안동으로 하는 안동 김씨, 안동 권씨, 안동 장씨의 시조가 돼 안동삼태사의 역사가 탄생했다.

안동차전놀이는 천 년 전 왕건과 견훤이 싸운 고창전투의 승전을 기념하고 대동단결의 장을 연출하기 위해 안동지역 주민들이 1천 년 동안 끊임없이 이어 온 우리 민족 고유의 장엄하기까지 한 민속놀이이다.

세계 유수의 민속놀이 대부분이 풍년이나 안녕을 기원하는 스타일이지만 안동차전놀이는 단결과 화합, 평화를 상징하고 독특하게도 나라의 승전을 기념하는 상무정신이 깃들어 있다. 이 같은 전승기념 민속놀이가 시연되는 곳은 몽골의 칭기즈칸놀이와 더불어 세계 2곳뿐이다.

일제가 차전놀이의 성격이 우리 민족의 혼을 되살린다고 우려하면서 놀이가 위험하다는 핑계를 들어 시연을 방해하는 바람에 일제 암흑기시절 한때 중단되기도 했으나 매년 농한기인 정월 대보름에 안동 남자들이 총동원되다시피 해 길안'임하'임동'용상 등 안동 동쪽 주민들은 동부팀으로, 풍산'풍천'서후 등 지금 도청이 들어선 안동 서쪽 주민들은 서부팀으로 나뉘어 평화를 맞이하는 대화합의 장을 연출, 민족의 혼을 역동적으로 그려 보여 주었다.

1969년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으면서 중요무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고 사단법인 안동차전놀이보존회가 구성돼 오늘에 이른다.

초등학교 국정교과서 사회과목으로 수록돼 있기도 한 차전놀이는 1990년 중반까지 육'해'공 사관학교 체육대회 때 개막식 행사로 매년 시연됐다. 미국 LA공연에 이어 2000년에는 독일 하노버에서 각국 대통령과 총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산업엑스포 식전행사로 공연했고, 2002년 서울특별시 '하이서울' 행사에 광화문에서 서울시청 앞까지 세종로 시연을 했으며, 작년에는 '한국인의 기상, 독도는 우리 가슴에' 캐치프레이즈로 독도 수호를 다지는 시연을 독도 현지에서 갖기도 했다. 차전놀이보존회는 안동지역 10개 학교와 자매결연을 하여 매년 순례 지도하면서 차세대들에도 국민단합과 화합, 평화 그리고 계승 전승 홍보에 노력하고 있다.

1천여 명에 이르는 동채꾼과 머리꾼 등이 동원되는 대중놀이인 차전놀이는 문화융성시대에 역사적인 의미를 연출해 내는데 너무나 걸맞을 뿐 아니라 경상북도 개도 700주년, 신도청시대 개막을 축하하고 경북의 신청사 개청에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데 손색이 없다. 특히 새 시대 새 도민들의 뜨거운 성원을 모아 대동단결의 장을 연출, 대내외에 웅도 경북의 새 출발을 알리는 데 전통 문화콘텐츠로서 더할 나위가 없다는 생각이다.

차전놀이보존회는 앞으로 더 나아가 우리의 소원인 통일을 위하여 6'25전쟁과 연계하여 민족 대동놀이로서 시연하고자 한다. '야, 우리 통일하자'라고 외치면서 서로 부둥켜 얼싸안고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아 분출시켜 낼 수 있는 시점이 오기를 간곡히 소망한다.

이재춘/안동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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