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우리 밥상에 오르는 김치. 김치는 발효 과학의 결정체다. 옛 조상들은 겨울철 김장독을 땅에 묻어 김치맛을 지켰고, 이 시대를 사는 후손들은 조상의 지혜를 이어받아 '김치 냉장고'를 발명했다. 다른 나라에도 절임 채소가 있지만 김치 같은 발효 음식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김치는 1차로 배추를 소금에 절이고, 2차로 양념으로 배추를 다시 절이는 세계를 대표하는 발효 음식이다. 김치에는 어떤 과학적 원리가 숨어 있을까?
◆김치맛의 비결은?
흔히 음식의 맛은 '손맛'이라고 한다. 같은 재료를 똑같이 계량해 넣어도 만드는 사람마다 음식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김치맛을 결정하는 것도 손맛일까? 각종 연구를 통해 김치맛을 결정하는 것은 발효 과정이며, 이 발효는 '절임'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최근에는 발효의 주역이 양념소가 아니라 '절임배추'라는 구체적인 연구 결과도 나왔다. 편리한 김장을 위해 절임배추를 주로 구입하는 사람들에게 그리 반가운 소식은 아니다.
부산대 식품영양학과와 경남정보대 식품영양학과의 공동연구 결과에 따르면 김치 발효는 양념보다 배추절임에서 시작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올해 '한국식품영양과학회지'에 발표한 논문 '절임 배추와 양념소가 김치 발효에 미치는 영향'은 이 같은 김치의 발효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연구팀은 김치를 절임배추, 양념소, 포기김치 형태로 각각 발효했을 때 김치가 어떻게 변하는지 4℃에서 4주간 관찰했다. 그리고 수소이온 농도지수(pH)와 산도, 총균 및 유산균 수, 배추 조직의 탄력성 등을 측정했다. 연구 결과, pH와 미생물 수, 산도의 변화를 고려해 볼 때 양념소가 절임배추나 포기김치보다 발효가 느리게 진행됐다. 이에 비해 절임배추와 포기김치는 양념소보다 빠르게 발효가 진행됐다.
김치맛은 발효 초기 온도가 중요하다. 7~8도 이하 온도에서 숙성하면 톡 쏘는 탄산감을 느끼게 하는 류코노스톡 유산균이 잘 자라게 돼 김치가 맛있어진다. 김장을 과학적으로 설명한 책 '김장, 과학으로 버무리다'는 한국인 과학자들의 실험을 바탕으로 가장 맛있는 김치의 발효 상태를 설명한다. 이 실험은 땅속에 80ℓ 크기의 김칫독을 묻어두고 48일 동안 온도가 18도에서 4도까지 점점 떨어지는 상황을 만들어 진행됐다. 이 책은 "김치는 발효되다가 어느 순간 '부패'가 시작되는데, 그 직전까지는 김치의 맛이 더 좋아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김치의 산도가 증가했으며, 김치 속 세균의 숫자도 점점 늘어났다"며 "25일 이전까지는 순수하게 발효가 진행되다가 그 이후에는 발효와 부패가 동시에 진행됐다. 온도를 천천히 내리면서 김치를 익히다가 숙성이 어느 정도 진행된 15~20일경에는 영하 1도 부근, 세균이 발효나 부패를 진행하기 어렵지만 채소의 조직까지 망가지지 않는 온도에서 김치를 보관하면 겨우내 계속해서 맛있는 김치를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음인은 무, 양인은 배추가 적합해
태양인, 소양인, 소음인, 태음인 등 한의학에서 분류하는 사상체질별로 잘 맞는 김치를 찾아낸 연구 결과도 있다. 세계김치연구소는 최근 '한국 김치의 과학적 우수성 규명'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김치 원료와 사상체질별 적합성 여부를 발표했다. 사상체질학의 대가인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 등 체질 식품 전문가들의 연구 성과 분석을 바탕으로 김치원료로 사용 가능한 배추, 무, 마늘, 생강 등 47종의 식품에 대해 사상체질별로 적합한지 분류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소음인과 태음인에게는 무가, 소양인과 태양인은 배추가 적합한 것으로 나타났다. 체질별로 보면 소음인에게 적합한 원료는 무, 마늘, 생강 등 28종, 부적합한 원료는 배추, 오이 셀러리 등 8종이었다. 태음인에게 적합한 원료는 무, 고추, 가지 등 27종, 부적합한 원료는 배추, 생강, 미나리 등 6종이었다. 또 소양인은 배추와 양배추, 오이 등 20종이 잘 맞았고, 마늘과 생강, 고추 등 8종은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태양인은 배추와 파, 양배추 등 13종이 적합, 무와 마늘 고추 등 11종이 부적합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치의 과학을 놓고 다양한 국적의 석학들이 토론하기도 한다. 이달 5일 '국제 김치 심포지엄'이 열렸다. '김치의 과학, 산업 그리고 세계화'를 주제로 세계김치연구소와 부산대 김치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이 행사에는 '식품 물리학'(Food Physics)의 저자 로저 피구라 독일 오스나브뤼크 대학 교수, 에드가 챔버스 미국 캔자스 대학 특훈 교수, 일본의 대표적인 식품회사인 가고메사 연구소의 노부히로 야지마 박사 등 세계 유명 석학들이 참석해 김치와 관련된 강연을 진행했다. 세계김치연구소 관계자는 "국내외에서 김치와 발효식품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김치와 관련된 연구 결과를 공유한 의미 있는 행사"라며 "김치의 우수성에 관한 학술 정보를 나누며 김치를 세계적인 식품으로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황수영 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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