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중문화에 투영된 김치의 모습

김 시스터즈 노래 '김치 깍두기' 1962년 미국 빌보드 차트 2위

김시스터즈의
김시스터즈의 '김치 깍두기'가 실린 앨범.
딕펑스가
딕펑스가 '김치 깍두기'를 부르며 김치 버무리는 퍼포먼스를 하는 장면. 유튜브 캡처
MBC 드라마
MBC 드라마 '모두 다 김치'에서 '김치 싸대기'로 알려져 화제가 된 장면. 유튜브 캡처

MBC가 올해 4~10월까지 방영한 아침드라마 '모두 다 김치'는 배신과 좌절이 주는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김치 하나에 승부를 건 한 여자의 사랑과 성공 과정을 그린 드라마다. '김치'를 소재로 한 흔치 않은 드라마라는 점에서 주부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정작 이 드라마에서 가장 화제가 된 장면은 따로 있었다. 바로 여자주인공의 어머니가 여자주인공을 버린 남자주인공의 사무실을 찾아가 김치 봉지를 뜯어 그 속의 김치 한 포기를 남자주인공 얼굴에 던져버린 장면이었다. 이 장면은 네티즌들 사이에서 '김치 싸대기 장면'이라 불리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모두 다 김치'의 사례처럼 '김치'가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대중문화 속에 김치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대중문화 이곳저곳에서 찾아본 '김치' 조각들의 맛은 다양했다. 어떤 것들은 '톡 쏘는 시원한 맛'으로 대중들을 매료시키기도 했지만 더러는 시어빠진 맛으로 대중들의 얼굴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다.

◆김치를 찬양한 음악들

1959년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우리나라 걸 그룹이 있다. 바로 가수 이난영의 두 딸(김숙자'김애자)과 이난영의 오빠인 작곡가 이봉룡의 딸(이민자)로 구성된 '김시스터즈'였다. 당시 김시스터즈는 미국의 라스베이거스의 호텔 디너쇼부터 TV쇼까지 다양하게 활동했는데 이들이 1962년에 발표해 그 해 빌보드 싱글차트 2위에 올랐던 노래가 바로 '김치깍두기'다.

이 노래의 가사를 살펴보면 '김치'는 한국을 그리워하는 매개체로 쓰인다. '머나먼 이국 땅에/ 십년 넘어 살면서/ 고국생각 그리워'로 시작하는데, 런치에다 비프스테이크가 아무리 맛이 좋아도 '우리나라 배추김치/ 깍두기만 못하더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의 김치와 깍두기를 '코리아의 천하명물'이라 하며 '자나깨나 잊지 못할/ 김치 깍두기'라고 말한다.

김시스터즈의 '김치 깍두기'는 올해 많은 후배 가수들의 리메이크 대상이 되기도 했다. 가장 널리 알려진 리메이크는 지난 8월 23일 방영된 KBS 2TV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에서 이 노래를 부른 록 그룹 '딕펑스'의 것이다. 딕펑스는 이 노래를 신나는 로큰롤로 편곡해 부르면서 무대 위에서 직접 김치를 버무리는 퍼포먼스를 보여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최근 발매된 양희은의 새 앨범 '양희은 2014'에도 차분한 재즈 스타일로 편곡된 '김치깍두기'를 들을 수 있다.

'만약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무슨 맛으로 밥을 먹을까'로 시작하는 가수 정광태의 '김치주제가'는 아마도 가장 널리 알려진 김치 찬양 노래라 할 수 있다. 1985년 발표된 이 노래는 '독도는 우리 땅'과 함께 정광태의 대표곡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곡의 가사 또한 김시스터즈의 '김치깍두기'처럼 '김치가 최고'라는 사실을 알리는 데 여념이 없다. '진수성찬 산해진미 날 유혹해도 김치 없으면 왠지 허전'하다고 하며 아예 대놓고 '김치 없인 못 살아 정말 못살아'를 외치며 '입맛을 바꿀 수 있나'라고 쐐기를 박아 버린다.

◆김치, 한국인의 부정적 모습을 빗대다

'김치'는 한국인을 대표하는 음식이기는 하지만 대중문화 속에서는 앞서 말한 드라마의 장면처럼 희화화의 대상이 되거나 '한국의 부정적인 모습'을 빗대는 도구로 쓰일 때가 많다. 특히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단어가 바로 '김치맨'과 '김치녀'다. '김치맨'은 일부 네티즌들이 한국인의 속성을 낮잡아 부를 때 쓴 단어로 2011년 '디시인사이드'와 같은 커뮤니티 사이트를 중심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그린 '김치맨'의 속성은 '즐기지 못하고 꼭 이겨야 한다', '무리로 몰리면 우월함을 느낀다', '성질이 급하다'는 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외국인들 사이에서는 '김치맨'이란 단어를 한국인을 비하하는 단어로 쓰이는데, 한 외국인 프로게이머가 한국인과 스타크래프트 게임 도중 채팅창에 'fxxxing kimchman'이라고 쓰고 나갔다는 소문이 퍼진 적도 있었다.

'김치녀'는 '김치맨'의 여성 버전으로 언급되는데 외국인들보다는 한국 네티즌들이 더 많이 쓰는 단어다. 한 인터넷 오픈 백과사전에는 '김치녀'를 "'김치나 먹는 동양인 주제에 제가 외국 패션 잡지나 좀 보고 명품백 든다고 말 같잖은 자기 우월감에 취한 이상한 여자들'이라는 함축을 지닌 표현"이라고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한 때 유행했던 말인 '된장녀'를 지칭하는 여성들과 일부 과격한 페미니스트 여성, 그리고 성적인 인터넷 방송을 해 관심을 끌려 하는 여성까지 싸잡아 이르는 말이다.

이처럼 김치가 한국인의 부정적인 모습을 가리키는 대명사가 된 데에 김중순(계명대 한국문화정보학과) 교수는 "한국인으로서 느끼는 자긍심이 아니라 한국인의 부끄러운 부분을 김치에 투영시킨다는 것은 일종의 사대주의적 발상"이라고 말했다. '김치'라는 음식은 한국 고유의 음식이고 과학적으로도 김치에 대한 우수성이 어느 정도 이뤄진 현재, 김치를 한국인의 부정적인 모습을 표현할 때 사용한다는 것은 결국 한국인으로서 문화적 자긍심 부족을 보여주는 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이화섭 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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