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반어

나 보기가 역겨워 / 가실 때에는 /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이것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의 마지막 연이다. 만약 아주 성능이 좋은 컴퓨터가 있어서 이 부분의 내용을 시각화해서 출력하라는 명령을 준다면 아마 컴퓨터는 매우 쉽게 명령을 수행할 것이다. 컴퓨터는 겉으로 드러난 말을 곧이곧대로 해석을 하기 때문에 아마 이별의 상황에서도 님을 말없이 고이 보내면서 울지도 않는, 요즘 속된 말로 '멘탈 갑'의 여인을 출력할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이 떠올리는 여인의 모습은 다르다. 이 여인은 겉으로는 고이 가시라고 이야기를 하며, 울지도 않겠다고 하지만 님이 떠날 때에는 아마도 펑펑 울면서 떠나는 님의 마음을 매우 무겁게 할 것이다.

이 상황을 컴퓨터가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반어'가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반어는 일반적으로 표현의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의도와 상반된 표현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 국어 40점을 받아 온 아들에게 엄마가 "잘했다"라고 한다면 칭찬이 될 수도 있고, 비꼬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이에 대한 판단은 보통 상황에 대한 분석과 화자의 어조를 통해 알 수 있다. 만약 30점만 맞던 아이가 40점을 맞았고, "어이구, 우리 아들 잘했네"라고 한다면 칭찬할 만한 상황에서 칭찬으로 보이는 표현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것은 칭찬이라고 할 수 있다. 대신 남들은 다들 100점 맞는데 아이만 40점을 맞았고, "자알 했다"와 같이 냉소적인 어조로 말을 했다면 그것은 칭찬이 아니라 비난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진달래꽃'의 마지막 연이 반어로 읽히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 여인이 울지 않을 사람이 아니고, 남자를 그냥 고이 보내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자신과 같은 진달래꽃을 '즈려 밟고'(경상도 말로 번역하면 '삐대고' 정도가 된다.) 가라는 부분을 통해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 그리고 정상적인 언어 배열이라면 '죽어도 눈물을 안 흘리겠습니다'가 되는데 이것을 운율에 맞게 읽으면 '안 흘리겠습니다'가 강조되지만, '아니'를 앞으로 도치시키면 '흘리우리다'가 강조된다. 이를 통해서도 자신이 표면적으로 한 말과 의도가 상반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이 언어적 반어라고 한다면, 기대한 것이나 의도한 것과 반대로 일이 진행되는 경우를 상황적 반어라고 한다. 남자는 근사한 프러포즈를 위해 촛불을 준비했는데, 촛불에 여자가 큰 맘 먹고 산 옷이 타는 것과 같은 것이 상황적 반어가 되는 것이다. 요즘 학교에서는 선행학습 금지법 때문에 가르칠 내용을 정하기가 어렵다. 사교육을 잡겠다는 법 때문에 아이들에게 사교육 시장으로 가라는 이 상황이야말로 진정한 반어라고 할 수 있다.

민송기 능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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