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변화는 예측할 수 없고 사람의 화복은 아침저녁으로 다르다지만 박근혜 대통령처럼 정치적 풍파가 잦고 거친 경우도 찾기 힘들다. 이번에는 청와대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 의혹이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그림자 실세로 불리는 정윤회 씨,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1부속실 비서관, 안봉근 2부속실 비서관),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박관천 경정, 동생 박지만 EG 회장, 전 문화체육관광부 유진룡 장관 등이 물고 물리는 고소 내지 폭로전 혹은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청와대는 올해 1월 6일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작성한 'VIP 측근(정윤회) 동향' 문건이 '찌라시 수준'이라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민심은 다르게 가고 있다. 지난 주말 현재, 국민의 56%(디오피니언 조사) 내지 63%(리얼미터 조사)는 청와대 내외부 10명의 비선 실세들 즉 '십상시'가 지난해 10월부터 매월 2회 정도, 서울 강남의 모처에 모여 VIP의 국정운영, BH(청와대) 내부상황 등을 체크한다는 내용을 담은 청와대 문건을 믿고 있다.
그런 가운데 '정윤회 국정개입은 사실'을 특종보도한 세계일보는 8일 또다시 당시 보도가 10인 모임 동석자에 의한 내부고발이며, 공직기강비서실에 증거자료까지 제출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내부 고발 입증자료가 모임상황을 촬영한 사진이나 동영상인지, 이들 간에 대화를 기록한 녹취물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터져 나온 얘기의 조각만 이어봐도, 비선조직의 말들이 진실되지 않은 경우가 하나 둘 터져 나오고 있다.
정윤회 씨는 "모든 것을 조사해라, 하나라도 잘못 있으면 감방 갈 것"이라고 인터뷰했지만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은 정윤회 씨로부터 문자를 받았고, 이재만 비서관으로부터 (정윤회의) 전화를 좀 받으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폭로했다.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야인이 검사 출신 현직 공직기강비서관에게 문자를 보내기는 쉽지 않으며,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움직여 전화 좀 받으시라고 말을 하게끔 하기는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정 씨는 지난여름에는 그룹 총수가 수감되어 있는 CJ가 거액을 후원한 독도콘서트에 정윤기라는 가명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당시 행사는 박 대통령 공식 팬클럽인 호박가족이 대거 참석했다. 물론 정 씨는 독도콘서트 행사 주최자가 예전부터 알던 친구여서 갔다가 우연히 일치가 됐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정 씨를 만나려면 얼마를 준비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문건과 오버랩되니 뒷맛이 개운하지는 않다.
이 일이 터지자 박 대통령은 지난 2일 통일준비위와의 오찬에서 '세상 마치는 날이 고민 끝나는 날'이라 언급했다. 고민이 깊다는 얘기이다. 요새는 좀 달라졌지만, 임금이나 군주의 말은 '금구옥언'(金口玉言)이라고 하여 농담을 하지 않으며 특히 목숨과 관련된 우스개는 금기이기에 '군무희언'(君無戱言)이라고까지 하는데 말이다.
곧 검찰 수사가 이번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의 전모를 밝히겠지만, 박 대통령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는 용기를 내야 한다. 나라를 흉흉하게 하고 있는 분란의 한가운데 서 있는 사람들은 박 대통령과 사적인 인연이 깊은 사람 혹은 박 대통령이 선발한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 이 기회에 박 대통령은 그림자처럼 의혹을 달고 다니는 과거 인연을 추상같이 떨쳐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면 어떨까 싶다. 나라 곳곳에 숨어 있는 새로운 인재들과 손을 잡아, 다시 한 번 정체성 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를 살려가면 어떨까 싶다. 언제 우리나라 관료들이나 보좌진이 업무 수행 중 일을 함부로 입에 올리고, 대통령과 각을 세우고 그랬던 적이 있는가.
나라를 움직이는 큰일을 하는 사람은 담력과 식견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주변에 말썽을 빚는 일체의 인물을 물갈이하고 국가관 전문성 헌신성을 두루 갖춘 새사람을 뽑아서 앞으로 남은 3년을 알차게 꾸려가야 하지 않을까.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통일과정에서 헛발 내딛는 가신의 목을 추풍낙엽처럼 날렸다. 지금 민심은 청와대 문건을 찌라시로 보고 있지 않다. 민심을 거스르기는 쉽지 않다. 민심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자칫 배를 엎을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이 다시 마음을 수습하여 오직 국민을 연인으로 첫 여성대통령 직을 훌륭하게 수행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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