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을 누비던 남정네가 우물가 여인에게 물을 청했다. 여인이 물 한 바가지 떠서 수줍게 건네는데, 섬섬옥수로 버들잎 한 움큼 훑어서 물에 띄웠다. 버들잎은 장식도, 고명도 아니었다. 물 마시다 체하면 약도 없기에 버들잎 후후 불면서 천천히 물을 드시라는 여인의 세심한 배려였다. 감명받은 남정네는 전쟁이 끝난 후 마을을 다시 찾아와 그녀를 부인으로 맞아들였다. 남정네는 고려 태조 왕건이고 여인은 유씨 부인이다.
우리 선인들은 목마른 이를 외면하지 않았고 살림살이가 어려워도 과객에게 따신 밥을 내놓았다. 세월이 흘러 우리는 기적 같은 경제 발전을 일궈냈지만 인심은 예전만 못하다. 물을 가지고 '내것 네것'을 다투는 세태가 됐다. 공업도시 하류의 강유역에서 취수를 하는 사람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국내 대표적인 산업도시 구미의 아래쪽에서 낙동강물을 길어 쓰는 대구시민들은 수돗물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잊을 만하면 페놀, 불산 누출 같은 비상상황 등이 터졌다.
대구로서는 취수원의 상류 이전이 그만큼 절박하지만, 상류 지역민들의 반대 때문에 속을 태우고 있다. 하늘에서 뿌려진 비가 강으로 모여 바다로 흘러가는 게 순환이고 섭리이다. 상류 지역민들과 사전 협의 없이 취수원 이전을 성급히 추진하고 발표한 대구시 당국의 불찰이 크다. 그러나 대형 댐으로 생긴 수몰지역 때문에 큰 피해를 입은 안동과 같은 곳이 아니라면, 흐르는 강물을 자기 소유라고 보는 인식에도 문제가 없지 않다.
'경쟁자'를 뜻하는 영단어 'rival'은 'river'(강)라는 말에서 비롯됐다. rival은 강변을 마주 보고 살면서 같은 강물을 마시는 두 집단을 뜻했다. rival은 운명 공동체이면서 경쟁자이기도 하다. 이렇듯 물은 워낙 소중하기에 이웃지역 간의 갈등을 유발시킬 수 있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여러 지역을 경유해 흐르는 광역 수계에 대해 법령을 정해놓아 물을 둘러싼 갈등을 예방하고 있다. 미국 콜로라도'유타'네바다'애리조나'캘리포니아 등 5개 주를 거쳐 흐르는 콜로라도 강의 경우 연방정부 직할 기구가 각 주의 농작물 생산량을 근거로 산출한 기준에 따라 물을 배분하고 있다.
광역 수계 업무는 정부의 소관이다. 대구 취수원 이전 사업에 관한 한 정부는 '목 마른 자가 샘을 판다'는 태도로 팔짱을 끼고 앉았으며 지역갈등 해결에 관한 한 직무를 방기해왔다. 대구의 절박한 문제인 취수원 이전 문제, 이제 정부가 책임감을 갖고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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