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에 누워 창밖을 바라보는 유성우(가명'24) 씨의 얼굴에는 그늘이 져 있다. 한 달 전만 해도 자전거와 오토바이 타기를 좋아하던 성우 씨는 하루 종일 누워 있거나 휠체어를 타고 움직여야 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큰 사고를 당해 오른쪽 다리뼈가 조각조각 났기 때문이다. 사고로 다리뿐 아니라 턱뼈가 부서지고 뇌출혈에 심장 판막까지 다치는 등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기댈 곳이라곤 병든 할아버지밖에 없는 그는 몸을 다치며 마음도 함께 다쳤다.
"믿을 건 건강한 몸 하나뿐이었는데 이젠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해요. 수술비며 병원비 부담 때문에 간병을 하고 계신 할아버지 얼굴 뵙기도 죄송스러워요."
◆부모에게 버림받은 성우 씨
성우 씨는 어머니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세 살 무렵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을 했고 집을 떠난 어머니는 그 이후로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아버지와 함께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서 지내게 됐지만 10년 전쯤에는 아버지마저 집을 나갔고 소식이 끊겨 버렸다.
"그때가 대구지하철 참사가 일어났을 때였어요. 아버지를 찾아 만방으로 헤매다 혹시나 사고를 당하신 건 아닌가 할아버지와 참사 현장까지 갔었죠. 그렇게 걱정하며 찾았지만 아버지는 연락 한 통 없었어요."
그때부터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성우 씨의 부모님이 됐다.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으며 빠듯하게 살아가던 할아버지, 할머니는 손자까지 돌봐야 하는 힘겨운 상황에 처했다.
"할아버지는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일을 하실 상황도 아니었어요. 그래서 저를 돌보기 쉽지 않으셨을 텐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죠. 부모도 버리고 가는 세상인데…."
성우 씨가 중학생이 됐을 무렵 세 가족에겐 큰 시련이 닥쳤다. 살갑게 가족을 챙기던 할머니가 치매와 중풍을 얻게 된 것. 할아버지는 성우 씨와 아픈 할머니를 혼자 돌봐야 했다. 없는 살림에 병든 아내에 어린 손자까지, 고된 일투성이였지만 할아버지는 오히려 성우 씨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상황이 좋지 못해서 제대로 공부도 못 시키고 갖고 싶어하는 것도 못 사준다며 항상 미안해하셨어요. 저는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는데…."
병을 얻은 지 5년 만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떠나실 때쯤 성우 씨에겐 꿈이 생겼다. 마음이 답답할 때면 탔던 자전거가 그 꿈이었다. 평소에도 운동을 좋아했던 성우 씨는 자전거를 특히 좋아했고, 익스트림스포츠의 일종인 BMX(묘기 자전거) 선수가 되려는 꿈을 가졌다.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이 생겼었죠. 또래 친구들보다 잘한다는 평가를 받고 잘해 낼 자신감도 있었고요."
◆다리뼈가 조각날 정도의 큰 오토바이 사고
하지만 할아버지가 노쇠해지시면서 성우 씨는 평범한 아이들처럼 꿈만을 좇을 수 없게 됐다. 빠듯한 살림 탓에 16세가 되던 해 처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학교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까지 하다 보니 자전거에 오를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었고, BMX라는 꿈은 멀어져만 갔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그래도 BMX 자전거를 탔었는데 경제 사정이 나빠지다 보니 아르바이트를 2개씩 하는 날도 생기면서 자전거와는 이별했죠. 꿈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성우 씨가 19세가 되던 해에는 유일한 가족인 할아버지와 생이별을 겪기도 했다. 성우 씨가 성장하면서 할아버지와 함께 지내면 할아버지가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을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홀로 나와 살게 된 것. 좁은 원룸에서 홀로 살면서 일용직 건설 노동, 식당일, 가스배달 등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했다.
세상은 녹록지 않았다. 혼자 지내는 어린 성우 씨를 무시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월급을 제대로 주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억울한 일을 겪을 때에도 성우 씨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부모님 생각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수소문해 연락을 취하고 찾아가보기도 했지만 아버지에겐 '연락하지 마라'는 차가운 말을 듣고, 집까지 찾아간 어머니는 성우 씨를 만나주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가시면서 이곳저곳 아프신 할아버지에게 짐이 되기는 싫었어요. 도와 달라는 게 아니라 그저 가족이니깐 보고 싶고 힘이 되는 말이라도 한마디 듣고 싶은 거였는데…."
힘든 생활을 하던 성우 씨는 한 달 전쯤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가 났는데 오른쪽 다리 전체 뼈가 부서졌고, 뇌출혈에 심장까지 다치는 큰 사고였다. 세 번의 큰 수술을 했고 한 달간이나 중환자실에 입원해야 했다. 할아버지에게 짐이 되기 싫었지만 돌봐줄 사람은 할아버지뿐이었다. 할아버지는 지팡이를 짚어야만 걸음을 옮길 수 있을 정도로 다리가 아프지만 매일같이 손자를 돌보려고 병원을 찾고 있다.
자신의 몸이 건강했던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걱정이지만 더 큰 걱정은 수술비와 병원비, 또 몸이 아파 할아버지에게 계속 짐이 되지 않을지 하는 것이다. 걱정 때문에 성우 씨는 요즘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최근엔 요리사라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었는데 포기해야 하는 건지 생각이 많아요. 할아버지께 보답하면서 살 수 있게 제발 건강이 돌아오길 바랍니다."
김봄이 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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