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효(孝)에 대하여

까마귀를 반효조(反孝鳥)라 부른다. 늙은 부모를 먹이를 잡아서 먹여 살리기 때문이다. 깃털의 색깔이 검다고 재수 없다느니 하며 우리 이야기에 나쁜 이미지만 잔뜩 심어준 까마귀에게 그런 아름다운 것이 있다 하니 의아할 뿐이다.

죽어가는 부모님을 위해 단지(斷指)를 했다든가, 한겨울에 강에 가서 얼음을 깨고 찬물 속으로 들어가서 잉어를 잡아 고아 드렸다든가 하는 효(孝)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 많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미담(美談)을 들은 기억이 별로 없다.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것이 변화하기 마련이지만, 우리가 아끼고 꼭 남겨야 할 미풍양속(美風良俗)이 사라져 가는 것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효(孝)는 인간의 인격이고 존엄성이었다.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러도 꼭 우리가 간직하고 물려주어야 할 최고의 가치였다. 그런데 그 지고지순의 덕목은 차차 사라지고 불효에 관한 이야기만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우리나라의 은퇴 자금이 선진국의 4분의 1이 안 된다는 이야기는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야 두말할 것도 없이 자녀들의 뒷바라지에 부모가 은퇴할 때까지 번 돈을 모두 밀어 넣은 탓이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독립하는 선진국과 달리 자녀가 결혼해서도 부모님의 뒷바라지가 필요한 우리와 차이가 나는 것이다. 우리는 자녀가 성장을 해도, 살림을 나도 꾸준히 뒷바라지를 한다. 부모가 죽을 때까지 그치지 않으며 자녀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새끼들이 어느 정도 자라면 냉정하고 매몰차게 분가시키는 날짐승과 들짐승보다도 잘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노인들이 1년에 4천 명 이상 자살하고 80%가 최저 생계비로 연명한다는 이야기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거기다가 부모를 버리는 패륜이 속출하는 것도 있어서는 안 될 슬픈 일이다. 부모님을 여행시켜 드린다고 제주도나 필리핀까지 가서 버리고 오는 일이 비일비재해졌다. 그러나 부모는 자식들에게 해가 될까 봐 끝까지 집 전화번호나 이름을 모른다고 잡아뗀다는 이야기도 신문의 사회면을 종종 장식한다. 자식이 거두지 않아서 혼자 살던 노인이 홀로 쓸쓸히 이 세상을 떠나고 장례식도 없이 직장(直葬)하는 이 슬픈 현실은 기필코 바뀌어야 한다.

효(孝)는 포상하여 더욱 장려할 일이요, 불효(不孝)는 엄벌하여 그런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할 일이다. 법에 앞서는 것이 도덕이지만 도덕으로 안 되면 법을 개정하더라도 고칠 것은 고쳐야 할 일이다.

우리의 자녀들이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것 반의반이라도 부모님께 효도한다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가 만일 다른 별로 살러 간다면 꼭 가져가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국의 효 정신'이라고 했다 하지 않는가.

김여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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