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해의 창] '썸' 그리고 소송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쓰는 단어 중에 '썸'이라는 말이 있다. 이른바 썸씽(Someting)의 줄임말이다. 직역하면 '무언가' 정도가 아닐까 싶다. 20, 30년 전에도 쓰여던 걸로 기억이 된다. 당시에는 단순히 남녀가 사귀는 것을 뜻하는 은어였다.

하지만 현재 이 표현은 보다 디테일한 상황을 일컫는 것으로 진화했다. '서로 사귀기 전의 전조 상황'으로 고백하지는 않았으니 사귄다고 말하기는 그렇고, 하는 행동을 보면 사귀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그렇고'''. 한 마디로 애매모호한 상황이다. 이런 연애는 흔히 '썸 타다'라는 말로 응용된다.

그런데 행정이 '썸을 타면' 어떻게 될까. 행정의 사전적 의미는 '정부 내지 국가기관의 모든 활동 중에서 입법'사법을 제외한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다른 말로 풀어보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민간과의 어떤 관계를 가지는 것이 아닐까. 행정 서비스가 되기도 하고 행정 규제가 되기도 한다.

행정이 종종 '썸'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생기는 곳이 바로 '재량 행위'이다. 결국 행정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상식적인 판단'이라는 것 자체가 모호하고 애매한 것일 수밖에 없다.

전국 여객선 노선 중 최고의 황금 노선으로 불리는 포항~울릉 노선은 최근 몇 년간 소송과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재 3개 선사가 각각 3개의 여객수송면허를 가지고 있는데 2개에 대해 포항지방해양항만청과 선사들 사이에 소송이 진행 중이다. 1개는 해양청이 면허를 취소한 데 대한 반발이고 1개는 면허를 발급한 데 대한 반격이다.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해운법이 문제인 탓도 있지만, 포항해양청에 소송을 제기한 당사자들은 '해양청이 재량 행위를 넘어섰다'고 주장한다.

포항해양청은 과거 해당 노선을 독점적으로 운항했던 대아고속해운과 유착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 해운업계 공통된 의견이다. 이것이 '원죄'이다.

대아고속해운은 당시 포항~울릉 노선을 운항하면서 복수노선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었다. 단독 노선으로는 수익이 남지만 복수노선으로는 자신들이 원하는 '수익'을 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대아고속해운은 당시 수송기준치나 배가 접안할 수 있는 부두 상황 등을 해양청에 끊임없이 제기했다.

현재 해양청을 상대로 면허취소처분 취소 소송을 진행 중인 광운고속해운이 지난해 여객선 대체신청을 할 때 당시 해양청은 선사들의 부실화와 부두 상황 등을 이유를 들며 인가를 두 달 가까이 질질 끌었다. 하지만 면허 취소처분은 정말 단호하고 신속했다.

해운법상 취소처분에 대한 세세한 규정은 없다. 최근 태성해운의 운항시간 변경 인가를 두고도 기항지와 종착지가 바뀌는 등 신규면허에 가깝다는 주장이 해운업계 안팎에서 제기되면서 특혜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결국 모든 것이 모호한 재량 행위로 결정된다.

자신의 입맛대로 재량 행위를 벌이는 해양청의 해운 행정은 '썸 타기'처럼 모호하고 폐쇄적이어서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김대호 기자 dhki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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