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3인방이 박 대통령을 살리려면

신문사를 떠나 성공한 유통사업가로 변신한 후배가 장문의 이메일을 보내왔다. '대통령 측근 정윤회 동향 문건' 유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한 상황을 두고 태산 같은 걱정을 하면서다. 그는 정치부 기자로 있으면서 2000년부터 2년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담당했다. 그때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고 이춘상 등 핵심 보좌진은 물론 박 의원과도 기자 사이 이상으로 가깝게 지냈다고 했다. 당시 박 의원은 비중 있는 정치인이 아니었다. 후배는 그들(3인방)의 그때 성품과 인격으로 볼 때 요즘 세간에 오르내리는 것처럼 "절대 국정에 보탬이 되지 않을 일을 할 사람들은 아니다"는 주장을 했다. 그러면서 그들과 있었던 다양한 얘기들을 적어 보냈다. 후배의 글에서 그들은 박 의원의 보좌진이 아니라 인간적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로 묘사돼 있었다. 후배의 판단은 분명히 정확했을 것이다. 적어도 상당한 시간까지는.

그들이 변했다는 소문은 박근혜 의원이 새누리당의 대권 후보로 확고부동한 위치를 점하면서 조금씩 새어나왔다. 공천이나 선거 유세 일정 조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소문도 무성했다. 유세 현장에 박 후보가 한 번이라도 다녀가면 판세가 뒤바뀌는 형국이었으니 유세 일정과 박 후보와의 면담을 조정하는 일을 맡은 그들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청와대 입성 전에 그들부터 정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인수위에서 나오기도 했지만 크진 않았다. 그런 사람들은 인수위에서 밀려났다.

그들이 청와대에 들어가자 권력이 그들의 주변에 자리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어려운 시기에 십수 년을 함께 해온 그들과 끝까지 함께 할 박 대통령의 스타일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들보다 대통령을 더 편하게 보좌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누구보다 대통령의 성공을 희망하고 그 길을 가는데 심부름꾼이 되어야 할 그들이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곳곳에서 인사 전횡과 월권설이 불거져 나온다. 대통령의 일정을 챙기는 제2부속비서관이 민정수석실에 파견되는 경찰 인사에 개입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청와대 내부 살림을 사는 총무비서관 이름이 업무와 전혀 연관이 없는 정부투자기관 사장 선임에 오르내린다. 군 장성 인사에도, 국정원 인사에도 그들이 거론된다. 비선 라인의 핵심으로 꼽히는 정윤회 씨도 결국 이들을 통해 인사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이 있기 때문에 정윤회 씨의 막후 조종설이 힘을 발휘한다.

그들은 거짓말도 서슴지 않았다. 정윤회 씨와 대통령 취임 이후 완전 연락을 끊었다고 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이들의 말을 믿고 중계한 청와대 대변인은 망신을 당했다. 현 정권 출범 이후 숱한 인사 실패와 비선 정치 의혹의 한복판엔 항상 이들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그런 그들이 이제는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청와대의 공식 문서를 '찌라시'로, 문서 유출을 '국기 문란 사건'으로 규정한 마당에 검찰의 수사 결과는 뻔하다는 예측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 비서관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는 것은 부당하다. 성역 없는 수사와 수사 결과의 신뢰성 확보를 위해서는 민간인 신분이어야 한다.

당사자들은 억울할 수도 있다. 외부 접촉도 극도로 자제했고, 대통령께 충성한 죄밖에 없는데 모든 책임을 본인들에게만 전가하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일 수도 있다.

그런데 어쩌랴. 민심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을. 소문이 나는 것 자체가 허물이고 대통령에겐 부담이다. 주군을 성공한 대통령으로 만들려면, 아니 적어도 실패하지 않은 대통령으로 남기려면 핵심 참모가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왕건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주군복으로 위장한 채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 신숭겸을 떠올려 보라.

정에 약한 박근혜 대통령은 절대 그들을 내치지 못하니 스스로들 딱 2년만 떠나보라. 대통령이 지금보다 국정 수행을 잘한다면 그들의 공이 될 것이요, 못하면 그들의 책임이 아닌 것이 증명되니 다시 돌아가 대통령과 같이 퇴진해도 된다. 그렇지 못하면 어쩌는 수 없이 대통령이 그들을 내치는 상황으로 흐르게 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릴 권한을 행사하던 '3허씨'를 내친 사례를 교훈으로 삼아도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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