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정보국(CIA)의 테러 용의자에 대한 잔혹한 고문 실태를 담은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 보고서가 9일(현지시간) 공개되면서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유엔은 국제법에 따라 고문 관련자들에 대한 제소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미 행정부는 국제 테러 집단의 보복 공격 등이 뒤따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해외 외교 공관과 시설 등에 대한 보안과 경비를 강화했다.
특히 이번에 드러난 잔혹 행위가 대부분 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 자행된 것이라는 점에서 보고서 공개를 두고 공화당과 민주당 내 정치 공방도 가열될 전망이다.
다이앤 파인스타인(민주'캘리포니아) 상원 정보위원장은 이날 비밀로 분류된 총 6천800쪽 분량의 내용을 약 500쪽으로 요약한 보고서를 공개하고 "알 카에다 대원 등을 상대로 한 CIA의 고문은 법적 테두리를 넘어선 것일 뿐 아니라 별로 효과적이지도 못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2001년 9'11 사태 이후 유럽과 아시아의 비밀시설에 수감된 알 카에다 대원들을 상대로 자행된 CIA의 고문 실태를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이에 따르면 CIA가 테러 용의자를 조사하면서 적용한 이른바 '선진 심문(enhanced interrogation) 프로그램'은 CIA가 백악관과 의회에 설명해온 것보다 훨씬 더 야만적이고 잔혹했지만 테러 위협을 막을 정보를 제대로 얻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표적 가혹 행위는 구시대적 수법인 구타와 잠 안 재우기, 독방 수감을 비롯해 물고문과 총살 및 성고문 위협 등이다.
고문 과정에서 일부 수감자는 저체온증으로 사망까지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CIA와 미 정부 고위 당국자들은 기밀 정보를 특정 언론에 흘리는 수법 등을 통해 이 프로그램이 매우 효과적이고 다수의 테러 음모를 분쇄했다면서 일반 국민과 정치권을 호도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파인스타인 위원장은 이번에 드러난 관행은 미국 역사의 '오점'이라고 규정하고 "어떤 용어로 포장하든 CIA 수감자들은 고문을 당했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즉각 보고서 공개를 환영하고 고문 금지를 약속했다.
그는 이날 성명을 내고 "CIA의 가혹한 심문 기법은 미국과 미국민의 가치에 반하는 것"이라며 "그게 내가 취임하자마자 고문을 금지한 이유이고 이런 방법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지속적으로 행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보고서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과거 관행'이 대부분 전임인 부시 대통령 시절 행해졌다는 점을 부각한 것이다.
미 행정부는 그러나 이번 보고서 공개가 테러 집단이나 극단주의자 등에 의한 보복 공격 등으로 이어질 공산도 있다고 보고 해외 주요 공관 시설에 대한 경비 강화 조처를 내렸다.
그러나 보고서 공개에 대해 CIA 등 정보 당국과 공화당은 반발했다.
존 브레넌 CIA 국장은 과거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CIA의 조사 기법이 테러 위협을 막고 실제 공격 음모를 와해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체 검토한 바로는 혹독한 조사를 통해 실제 테러 계획을 좌절시켰으며 테러리스트를 체포하고 미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정보를 생산했다"고 강조했다.
CIA의 반인권적 고문은 국제문제화할 조짐도 보이고 있다.
벤 에머슨 유엔 대테러'인권 특별보고관은 이날 발표한 성명을 통해 "국제 인권법에 어긋나는 조직적 범죄와 엄청난 인권침해가 발생했다"며 "미국 정부는 고문에 책임이 있는 CIA 및 정부 관리들을 기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는 "국제법은 고문 행위에 연루된 공직자들을 면책해주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면서 "이는 고문 가해자는 물론 이런 범죄를 입안, 계획, 승인한 미국 정부 내 고위 관리들에게도 적용된다"고 못박았다.
이재협 기자 ljh2000@msnet.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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