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통쾌한 유행어 한 방, 갑오년 대한민국 '들었다 놨다∼'

김보성·이국주 '으∼리' 대박 행진…가수 정기고·소유 '썸 탄다' 히트

우리의 지치고 무료한 일상을 즐거움으로 채워주는 언어가 있다. '유행어'다. 가족 사이에, 동료들 사이에 유쾌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올 한 해도 각종 대중매체에 다양한 유행어가 등장해 인기를 얻었다.

◆웃기는 유행어 대세. 으~리!, 호로록 호로록~, 앙~대여!

올해도 '웃기는' 유행어가 큰 인기를 얻었다. 주목할 만한 사례가 있다. 배우 김보성의 '으~리!'다. '의리'를 격하게 발음한 것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다. 김보성은 1990년대 중반부터 방송에서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의리 캐릭터'를 밀어붙였다. 그러다 올해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재조명받았고, 김보성의 CF 촬영으로까지 이어졌다. 한 식혜 음료 CF를 찍었는데, 이 CF가 뜨면서 유행어는 더욱 폭발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후 김보성은 최근까지 화장품, 게임, 온수매트 등 10여 편의 CF를 찍었다. 올해 한국광고주협회로부터 '광고주가 뽑은 좋은 모델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활약했다.

사실 여기까지만 보면 매년 초특급 유행어라면 응당 겪는 현상이다. 그런데 김보성의 '으~리!'는 조금 달랐다. 원작과 패러디 모두 흥했다. 또 다른 주인공은 코미디언 이국주. 이국주는 tvN의 개그프로그램 '코미디 빅리그'에서 김보성을 따라한 분장을 하고, '으~리!'를 외쳐댔다. 그 덕분에 이국주도 '으~리!' 콘셉트로 CF를 촬영하고, 예능 프로그램과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느라 바빴다.

실은 이국주의 패러디가 다시 김보성의 원작을 크게 띄웠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보성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이국주 덕분에 '으~리!'의 유행이 더욱 힘을 얻었다.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어쨌든 김보성과 이국주는 유행어의 새로운 시너지 창출 사례를 남겼다.

코미디언 이국주가 올해 제대로 히트시킨 유행어는 따로 있다. '호로록 호로록~'이다. 이국주는 tvN 코미디 빅리그에서 기존 대중가요를 개사한 '식탐송'을 다양한 버전으로 부르며 '호로록 호로록~'을 연발했다. 그러면서 이국주는 식탐이라 하면 빠질 수 없는 연예인으로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유행어 제조기로 유명한 KBS '개그콘서트'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대구 출신 코미디언 김영희의 '앙~대여!'가 대표적이다. '안돼요'를 강한 비음 섞인 목소리로 발음한 것이다. 개그콘서트에서 중년 여성으로 꾸미고 나온 김영희는 앙탈을 부릴 때마다 특유의 몸짓과 함께 이 대사를 연발했다. 코미디언들은 이런 '부정화법'을 사랑한다. 대중에 잘 먹혀서다. 1년여 전 개그콘서트에서는 갸루상(박성호)의 '아니무니다'와 비상대책회의 본부장(김원효)의 '안 돼~'가 인기를 얻었다.

◆드라마, 영화, 대중가요 수놓은 유행어들

꼭 배꼽 잡게 만들지 않더라도 올 한 해 인기를 얻은 유행어가 적지 않다. 올해 주목받은 드라마 몇 작품을 살펴보자. SBS '별에서 온 그대'에서 천송이(전지현)는 도민준(김수현)을 찾을 때 입에 착착 달라붙는 특유의 발음으로 "도매니저"나 "도민준씨"라고 했고, "쏴리"(sorry)나 "내가 깠어"라며 매력을 발산했다. 막장드라마 인기 계보를 이은 MBC '왔다! 장보리'에서 장보리(오연서)는 '보리보리 장보리'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JTBC '밀회'에서 오혜원(김희애)은 피아노를 배우는 제자의 볼을 꼬집으며 "이건 특급 칭찬이야"라고 했다. 이후 '특급'이라는 표현은 각종 단어에 수식어로 붙으며 패러디됐다. tvN '응답하라 1994'에서 경남 삼천포 출신 서울 유학생 삼천포(김성균)는 함께 하숙하는 친구들을 부를 때 015B의 노래 '신인류의 사랑'을 개사해 "우~샤랄랄라, 형님 식사하시라는데요" "우~대형 잡채, 우~제육볶음"이라고 애드리브 연기를 펼치며 웃음을 선사했다.

영화의 경우 관객 수 1천700만 명을 기록한 '명량'에서 이순신(최민식)이 내뱉은 대사 "아직 신에게는 열두 척의 배가 남아있사옵니다"가 큰 울림을 남겼다. 물론 진지한 원작과 달리 아이들은 아직 열두 개의 방학 숙제가 남아있다며, 직장인들은 회식 자리에서 아직 열두 병의 소주가 남아있다며 재치 있게 패러디했다.

대중가요로 퍼진 유행어도 있다. '썸'이다. '썸 탄다'는 용례로 요즘 청춘남녀의 이뤄질 듯 말 듯 아슬아슬 미묘한 애정 전선을 가리키는 이 단어는 알앤비 가수 정기고와 씨스타 멤버 소유가 함께 불러 인기를 얻은 곡 '썸'에 사용됐다. 이 곡의 노랫말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가 다양한 변주로 유행했다.

◆CF도 유행어 제조기

CF는 유행어의 종착지다. 유행어의 인기를 빌려 소비자의 상품 구매를 이끌어내기 좋아서다. 하지만 역으로 CF가 유행어 제조기 역할을 맡기도 한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가 이달 1일 발표한 '2014년 소비자행태조사'(MCR)에 따르면 올해 소비자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응답한 CF는 SK텔레콤의 '잘생겼다'(15.5%)였다. 배우 전지현과 이정재, 피겨요정 김연아 등이 출연해 발랄한 멜로디의 CM송을 부르며 '잘생겼다'를 연발했다. 2위는 KT CF(7%)였는데, 국악소녀 송소희의 '아니라오' CM송과 개그콘서트 코미디언 조윤호의 유행어 '끝'이 효과를 낸 것으로 분석됐다. 3위는 LG 유플러스 CF(2.8%)였다. 여기서 빅뱅 멤버 '지드래곤'은 매력적인 발음으로 '팔로미'(8llow Me)라고 읊조렸다. 이 유행어는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네티즌들의 패러디 대상으로도 인기를 끌었다. 이 조사에는 올해 전국 13∼64세인 5천 명의 소비자가 참여했다.

황희진 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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