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업 규제 완화 요구에 밀린 화평법'화관법

당초보다 처벌 규정 느슨 "화학 사고 예방에 한계"

내년부터 시행될 화학사고 예방 관련 법안이 기업들의 규제완화 요구에 밀려 처벌 수위와 규정이 느슨해졌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관련 법이 당초 취지보다 약화되면서 대구 영남도금조합 화학물질 유출 사고 등 잇따르는 화학사고를 예방하는 데 한계를 드러낼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는 내년 1월부터 국민에게 '화학물질 사고로부터 안전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이하 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이하 화관법)을 시행한다. 두 법안은 사업장에서 화학물질을 안전하게 취급하고 생활 속에서 소비자가 현명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화학물질의 생산'유통 등 전 과정의 안전관리를 강화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정부는 두 법의 시행으로 최근 증가 추세를 보이는 화학사고가 크게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구지방환경청에 따르면 화학사고 발생건수는 2012년 2건, 2013년 7건이었고 올해(12월 10일 기준)는 15건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가 하위법령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당초 규제가 상당 부분 완화돼 취지가 퇴색됐다며 강화 및 보완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당초 화평법은 화학물질 안전 정보를 공개하도록 했으나 협의 과정에서 사용'판매'제조'수입량 등의 정보는 생략이 가능하게끔 바꿨다. 정보 공개 특히 제품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성분이나 함량 등의 정보는 국민들 접근이 불가능하다.

신규 화학물질에 대해 연구개발(R&D)용은 등록 면제를 해준 것도 비판 대상이 되고 있다. 만약 기업이 일반용 물질을 R&D용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하면 사실상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또 연간 1t 이상 유통되는 기존 화학물질 중 등록 대상 물질을 3년마다 지정'고시하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는데, 기업들이 이를 악용할 여지가 많다. 등록 없이 3년간의 유예기간 동안 화학물질의 제조'수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책임과 배상을 강화하기 위한 과징금도 완화됐다. 화관법에 정해진 매출액 대비 최대 5% 과징금도 사실상 제대로 부과하기 힘들다. 세부적인 부과 기준 자체가 느슨해졌기 때문이다. 법안에 따르면 사망 사고가 나더라도 해당 사업장에서 처음 발생한 일이고 과실이 가벼운 경우 '경고'로만 끝난다. 설사 중대 사항을 위반했더라도 처음에는 최대 30일 영업정지가 취해진다. 여기에 과징금 산정 기준도 '일 부과 기준' 최대치가 매출액 대비 3천600분의 1이란 점을 고려하면 '최대 5%'는 유명무실하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연매출 100억원인 사업장이 중대 과실로 화학사고를 내도 영업정지 최대 일수인 30일에 전체 매출액의 3천600분의 1인 278만원가량을 곱한 8천340만원 정도가 과징금으로 부과된다. 이는 매출액의 1%가 안 되는 금액이다. 금액 자체가 대폭 낮아지면서 사실상 '징벌적 배상'으로 보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김해동 계명대 교수(지구환경과)는 "현 정부가 규제 완화를 강조하면서 두 법안이 많이 느슨해졌다"며 "두 법안의 세부안이 앞으로 강화돼야 하는 한편 난립하고 있는 영세 화학물질 취급 업체를 관리하는 방안도 포함돼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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