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하늘의 영광, 땅의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예수께서 탄생하신 날 밤 하늘에서 메아리쳤던 천사들의 합창소리다. 여기서 하늘의 영광스러움에 대하여 이의를 달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땅의 평화는 여전히 미결상태로 남아 있다. 많은 사람들이 노벨 평화상을 받았지만 땅의 평화는 요원하고, 풍요의 시대를 살아가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불안으로 가득하다. 천사들이 노래했던 진정한 땅의 평화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2천 년 전 로마 황제 옥타비아누스가 악티움전투에서 정적 안토니우스를 물리친 후 로마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소위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로 불리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언어와 군제가 통일되었고, 군대가 주둔하는 곳은 어디든지 대로가 닦였다. 말 그대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게 되었다. 로마는 이제껏 역사에 출현한 적이 없었던 대제국이 되었다. 황제는 존엄자라는 뜻의 아우구스투스로 선포되었다. 당시 온 세상은 번영과 힘, 상업적 성공에 흠뻑 젖어 있었다. 무엇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말 그대로의 평화가 실현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천사들이 '땅에는 평화'라고 외쳤던 것이다. 땅에는 새로운 평화가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아니면 이미 새로운 평화가 찾아왔다는 말인가? 세상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졌는데 황제가 아닌 다른 어떤 신이 땅에 평화를 선물한다는 말이 얼마나 어리석은 소리인가? 돈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되고, 음식은 굶주린 자에게 좋은 소식이 되지만 배부른 사람에게는 무슨 복음이 되겠는가? 하지만 당시의 철인 에픽테투스는 이렇게 말했다. "황제는 땅과 바다에 평화를 주고 전쟁에서 벗어나게 할 수는 있지만, 격정과 슬픔, 시기와 분노에서 벗어나게 할 수는 없다. 그는 마음의 평화를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은 외적인 평화보다 마음의 평화를 더욱 갈망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새로운 평화가 요구되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평화는 과연 어떤 것인가?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만을 평화라고 할 수 있는가? 한반도에서 전쟁이 그친 지 오래되었지만 참된 평화가 존재하는가? 아우구스투스의 평화로 대변되는 로마의 평화는 민족들로 하여금 무기를 내려놓게 하였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보이지 않는 전쟁을 그치게 할 수는 없다. 세상은 독재자들을 권좌에서 끌어내려 옥에 가둘 수는 있어도 분노와 탐욕의 마음을 가둘 수는 없다.

인간들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어둠을 이기게 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평화뿐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과 원수된 모든 것을 청산하신 그리스도의 평화만이 서로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게 만드는 삶의 원천이다.

다시 성탄의 계절이 돌아왔다. 땅에는 여전히 불화의 소리가 난무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낙심하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의 평화가 있기 때문이다. 한 해 동안 서로 간에 주고받았던 상처와 아픔, 나라와 민족 간 수많은 다툼의 현장마다 그리스도의 평화로 인한 치유가 일어났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분단으로 고통받는 한반도에 참 자유와 정의의 모습으로 그리스도의 평화가 실현되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박창식 달서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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