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공간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해간다. 사람의 삶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하듯이. 그러나 그런 도시공간이 어떤 예상치 못한 힘에 의해 갑작스레 변하여 환경이 바뀌면 특정 공간은 고유의 장소성을 잃어버리고 혼돈에 빠진다. 전 세계의 도시들이 산업화 이후 고도성장을 이루면서 개발이란 명목으로 넓은 직선도로와 고층빌딩을 우후죽순 건설하면서 도시는 무개성과 획일화로 인해 사람들로부터 점차 외면당했다. 따라서 도심은 슬럼화되고 공동화 되었다. 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하여 지금 전 세계는 사람이 중심이 되며 이야기가 있고 개성이 있는 장소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새로운 도심재생과 그 일환으로 지속 가능한 친환경도시로의 변환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폐허같던 공간 수년 새 전국 명소로
방천시장에 조성된 김광석 거리는 2009년에 문화관광부의 문전성시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이루어졌으며 예술가들이 방천시장의 빈 공간에 입주하여 예술을 통한 시장활성화 사업이 계기가 되었다. 도시의 우범지역으로 폐허처럼 방치된 신천대로의 옹벽에 2011년 김광석의 삶과 노래를 벽화로 스토리화 하며 완성하였다. 이 지역 젊은 예술가들의 손에 의해 재창조된 것이다.
환경이 바뀌면서, 불과 3년 만에 부동산가치는 물론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이 찾고 싶어 하는 대구의 대표명소가 되었다. 더 주목할 것은 김광석 거리의 성공이 주변 환경을 자생적으로 변화시켜 이전에 재개발로 묶여 슬럼화된 주변지역까지 다시 활기찬 공간으로 변하게 한 것이다. 물론 요절한 가수의 인기에 힘입은 바도 있으나 디자인을 통한 환경의 성공적 변화가 얼마나 도시재생에 효과가 큰지를 보여주는 선례가 된 것이다. 주변 공터에 새로운 갤러리가 들어서고 폐가들은 리모델링하여 전시카페가 만들어졌으며 빈집이 상업시설로 변하면서 골목길에는 밤낮으로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한 것이다.
◆건물마다 각기 개성 또 다른 볼거리
방천시장 일대에서 새롭게 들어선 작지만 귀엽고 개성 있는 갤러리와 카페 그리고 식당과 상점을 발견하는 것은 이젠 자연스럽다. 건축이 장소의 특성을 반영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최근 시장 내에 건축된 건물들은 저마다 독특한 공간을 연출하면서 골목분위기에 적합한 소박하고 단순한 크기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리모델링을 한 건물도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각각 다른 개성을 담고 있다.
먼저 김광석 동상 가까이에 있는 커피명가와 갤러리가 있는 직사각형 건물은 1층에 접이식 문을 설치하여 앞마당으로 개방감을 주고 2층은 수평창을 만들어 평범한 형태이나 작지만 독특한 색의 간판과 어닝으로 특징을 부여한다.
그리고 김광석길에서 한 블록 떨어져 있는 갤러리 B2는 노출콘크리트로 된 입방체의 아담한 규모이다. 1층 전면을 가로면에서 셋백 시켜 데크 공간을 만들고 캐노피와 얇은 수직 벽의 틀로서 하나의 작은 야외무대처럼 정리하여 보행자를 배려하는 외부공간은 재치가 엿보인다. 거기에 더하여 대지경계에 세운 전시안내판과 돌출 캐노피의 모서리사인 그리고 2층 외벽에 돌출된 브라켓 조명등은 적절한 비례로서 귀여워 보이기도 한다. 또한 내부공간에서 바로 보이는 계단과 천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의 효과는 갤러리 카페에 안락한 느낌을 주고, 2층으로 돌아 올라가면 넓고 시원하게 느껴지는 갤러리가 있어 누구라도 좋은 가격에 부담없이 그림을 콜렉션 할 것 같이 편하다.
김광석의 노래 제목을 상호로 쓴 식당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건물 모퉁이 작은 자투리땅에 세계 곳곳의 도시까지의 거리와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세워놓아 자칫 너무 단순하여 심심할 뻔한 건물에 시각적 포인트가 되고 있다. 그 표지판 중의 하나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How far is your heart?"
◆모자라는 듯해 꽉찬 "역설적 매력"
이외에도 작아서 오히려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한 건물들이 많다. 김광석은 친근감이 가는 가수로서 얼핏 보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평범하고 소박한 남자 같다. 그의 노래 역시 들을수록 노랫말의 의미가 새롭게 느껴지고 멜로디가 편안해서 흥얼거려지는 특징이 있다. 방천에 들어서는 건물이 그런 느낌이다. 특별하게 대단한 건축은 없지만 김광석 길과 방천시장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잘 어울리는 듯하다.
이러한 개인 건물에 더하여 공간 분위기를 살릴 수 있는 새로운 공연장이 건설되고 있어 장소의 변화에 좋은 계기가 될 것 같다. 이 시설은 김광석 동상이 있는 작은 광장 앞의 옹벽에 새롭게 문을 만들어 옹벽 뒤에 있는 공원 속에 자리한다. 원형극장의 형태로서 객석부의 높이 차이로 공간과 형태에 변화가 있다. 이 변화는 공연장 좌, 우측의 잔디 객석과 뒷부분의 기존공원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볼륨을 만든다. 새로운 구조물이지만 공원의 느낌에 동화되고 있다. 무대 벽과 상부의 지붕은 검은색 철판으로 마감되어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소박하다. 원래 객석의 구조와 마감도 목재를 시스템적으로 조립하여 목조 원형극장을 만들어 자연스러움을 살리려 했으나 예산상, 관리상의 문제로 콘크리트구조에 좌석부만 목재를 사용하고 있다.
너무 일찍 가버려서 아쉬움이 있는 김광석의 삶처럼 명품이라 하기엔 뭔가 모자라고 부족한 듯한 김광석 거리에 들어선 건물들이 저마다 노래하고 꿈꾸고 여기에 더하여 마음껏 공연할 수 있는 원형극장까지 완성되면 이곳의 '건축은 합창을 하게 될 것'이다. 폴 발레리의 말처럼!
글=이정호 경북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사진=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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