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경주 팥

군산의 이성당(李盛堂)은 '앙금빵'으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탄 빵집이다. 팥으로 속을 채운 단팥빵을 말하는데 쌀가루로 만들어 빵 껍질이 얇은 것이 특징이다. 1945년부터 영업을 해왔으나 일제강점기 때인 1920년대 일본인이 지금의 가게에서 운영하던 이즈모야(出雲屋) 제과점이 그 출발이다.

이성당의 내력에서 짐작할 수 있듯 흔히 앙꼬빵으로 불리는 팥빵은 19세기 후반 일본에서 탄생했다. 기무라 야스베에(木村安兵衛)가 1875년 도쿄 긴좌에 연 기무라야 제과점에서 '앙팡'(Anpan)을 만들어 팔면서다. 이전까지 일본에 알려진 빵은 약간 짜고 신맛 나는 것으로 일본인 입맛에 잘 맞지 않았다. 이에 착안해 효모로 밀가루 반죽을 발효시킨 후 팥소를 넣어 구워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우리나라에도 전해진 것이다.

'앙꼬 없는 찐빵'이라는 말처럼 팥은 팥빵의 맛을 좌우하는 주재료다. 팥은 중국과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 오래전부터 재배된 작물이다. 국내 구석기 유적에서 팥이 출토되기도 했다. 반면 서양에서 팥은 낯선 작물인데 서양 요리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다.

팥은 한자어로 적두'홍두'소두'홍반두(紅飯豆)'미적두(米赤豆)라 하고 일본에서는 작은 콩이라는 뜻에서 '아즈키'로 부르는 등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다. 흰색과 검은색, 회색 팥도 있지만 붉은색이 주종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영어권에서는 단순히 붉은 콩(Red Bean)이라고 부른다. 동북아시아는 팥의 주산지이자 최대 소비지라는 점은 팥의 명칭과 다양한 가공법에서도 알 수 있다.

경주 특산품인 '황남빵'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유명한 팥빵이다. 1930년대 경주 최씨 집안이 황남동에서 만들어 팔기 시작해 황남빵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최근 들어 황남빵 덕택에 팥 재배농가가 거의 없던 경주가 팥 주산지로 자리매김했다는 소식이다. 지난 2011년부터 매년 황남빵 업체가 경주에서 생산되는 팥을 후한 값에 전량 수매하면서 한 해 생산량이 200t을 넘어섰다.

황남빵 측은 올해도 13개 경주 읍면 570여 농가를 대상으로 수매에 들어간다. 재배농가는 안정된 판로를, 황남빵 업체는 지역에서 나는 로컬푸드로 팥빵을 만들 수 있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이다. 지역 명물이 농작물 지형도까지 바꾸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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