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혼이 풍성해지는 '기부, 나눔'…나누는 기쁨에 흠뻑 빠진 사람들

이달 3일 앞산의 한 카페에서 대구가톨릭 미용인회
이달 3일 앞산의 한 카페에서 대구가톨릭 미용인회 '빛'이 주관한 다문화가정을 위한 사랑나눔콘서트가 열렸다. 김의정 기자
지난해 12월 희성전자 직원들은 바자를 열어 모금 운동을 했다. 희성전자 제공
지난해 12월 희성전자 직원들은 바자를 열어 모금 운동을 했다. 희성전자 제공
기부 모임 선우회는 필리핀 아동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려고 한 달 전부터 옷을 모아 기부를 준비했다. 선우회 제공
기부 모임 선우회는 필리핀 아동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려고 한 달 전부터 옷을 모아 기부를 준비했다. 선우회 제공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는 힘들게 달리다가도 순간 황홀감에 도달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 용어는 '나눔'에도 적용된다. '헬퍼스 하이'(Helper's high)는 봉사를 하거나 기부를 할 때, 돕고 난 뒤 며칠 혹은 몇 주 동안 생기는 심리적 포만감을 말한다. 정서적 충만감은 기부자에게도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온다.

연말, 헬퍼스 하이에 빠진 사람들이 있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에게 알리지 말라'는 말도 있지만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안다면 왼손도 덩달아 좋은 일에 나서지 않을까. 대구 곳곳에 있는 '착한 오른손'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이들이 말하는 기부의 기쁨은 기부하기를 머뭇거리고 있는 왼손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나도 기부에 나서야겠다'고 마음먹은 독자들은 쉽고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는 '이색 기부'도 눈여겨보자. 마지막으로는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기부에 대해서도 알아봤다. 연말을 풍성하게 보낼 방법, 정답은 '나눔'에 있는지도 모른다.

◆주려고 했더니 얻게 되는 기쁨

이달 3일 낮 12시. 대구 남구의 앞산 한 카페에는 다문화가정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작은 콘서트가 열렸다. 콘서트를 주관한 단체는 대구가톨릭 미용인회 '빛'이다. 미용인회가 섭외한 성악인 모임 '마중물 싱어즈'와 함께였다. 카페 안은 60여 명의 관객으로 붐볐다. 한 달 전부터 1만원을 내고 산 표로 음악회를 보러 온 관객들이었다. 이렇게 모인 수익금 일부는 다문화가정을 위해 쓰였다.

미용인회의 기부활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미용인회 회장 김순희 씨는 그동안의 기부, 봉사 활동의 역사를 설명했다. "20년 전 논공에 있는 대구요양원 봉사를 시작으로 매주 한 번씩 요양원이나 장애인시설에 미용 봉사를 갔어요. 하지만 이런 문화 행사로 기부금을 모은 적은 처음이에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50명 회원들이 모두 현업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선후배들을 설득하고 동참을 요구하는 게 힘들었어요. 이번 행사는 20명 정도가 퇴근 후에 짬짬이 시간을 내 팸플릿을 만들고 장소를 빌리고 전단을 나눠주는 일을 했어요."

힘든 여건 속에서도 기부를 포기하지 않았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미용인회 회원들은 "도움을 주려고 했다가 오히려 받는 기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봉사하러 간 곳에서 봉사 받는 사람들이 "기다렸다", "선물이라도 드려야 하는데"라는 말을 들을 때면 마음이 풍성해진다는 것이다. 김 씨는 "요즘 같은 세상에 어딜 가서도 들을 수 없는 말들"이라고 말했다. "힘들어도 계속 기부 활동을 하는 건 따뜻하게 건네는 말 한마디가 주는 중독성 때문인 것 같아요."

◆도울 수 있다는 희망

대구시 달서구에 사는 윤의언(73) 씨는 기초생활수급자다. 그의 딸은 2008년 세상을 떠났고 아들은 정신장애 3급으로 장애인 시설에서 생활 중이다. 윤 씨는 혼자 살지만 마음만은 따뜻하게 지낼 수 있었다. 주위의 도움 덕분이었다. 윤 씨는 매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아너소사이어티회원(사회복지공동모금회 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으로부터 쌀을 받아서 생활한다. 윤 씨는 "어려운 환경에서 살고 있지만 그래도 살아갈 힘을 낼 수 있는 건 주위의 도움 덕분"이라며 웃었다.

윤 씨가 받는 주변의 도움은 그를 마음의 부자로 만들었다. 올겨울엔 받은 사랑을 이웃과 나누고 싶다는 의미에서 적은 금액이지만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제가 돈이 많아서 많이 하면 좋은데 조금이라도 사회에 갚고 싶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돈일지도 모르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한 달을 살아갈 큰돈도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부하려고 합니다." 그는 이번 연말 달서구청 모금사업인 '달서사랑 365운동'에 20만원을 기부할 예정이다.

윤 씨는 자신의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을 얻는다. 그것이 윤 씨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남을 도울 수 있었던 이유다. "힘들다고만 생각하면 어떻게 살겠어요. 나도 사회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걸 이번 기부를 통해 느끼고 있습니다."

◆선행이 뻗어가는 즐거움

베푸는 친구들이 모여 만든 선우회(宣友會)의 시작은 평범했다. 고향 친구들이 모여 한 달에 한 번 회식을 하다 회의감을 느낀 것이다. '매번 먹고 마시는 데만 돈을 쓰지 말고 좋은 일에 써보자'는 게 시작이었다. 선우회 회장 권용길(45) 씨는 친구들에게 한 달에 1만원씩만 모아 좋은 일에 쓰자고 제안했다. "1만원이 큰돈 같지만 하루로 치면 330원이라면서 친구들을 설득했어요."

선우회의 주요 기부활동은 필리핀에 옷을 보내는 일이다. 이는 권 씨의 아이디어였다. "개인적인 일이 있어 20년 만에 필리핀을 찾았어요. 높은 건물도 많아지고 도로도 넓어졌는데 더 가난해진 사람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권 씨는 한국에 돌아와 필리핀에 옷을 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마음을 먹고 실천에 옮기자 상상은 뜻밖의 기회에 현실이 됐다. "필리핀에 사는 친구에게 부탁해 옷을 보낼 수 있게 됐고 SNS로 홍보를 시작하니까 여기저기서 공짜로 옷을 보내주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났어요. 이제는 옷이 쌓여 있을 정도예요." 선우회는 지난 6월을 시작으로 12월 현재까지 총 6차례 옷을 보냈다. 한 번 보낼 때마다 한 박스에 약 200벌의 옷이 들어간다.

선우회 회원들이 느끼는 기부의 즐거움은 '뻗어나가는 힘'에 있다. "행동으로 옮기다 보니 저랑 비슷한 뜻을 둔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됐고 그게 즐거움인 것 같아요. 처음에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이제는 진심을 알아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즐겁게 기부하고 있습니다."

◆'돕는다'는 자부심

대구시 달서구에는 티끌로 태산을 만들어 기부하는 회사가 있다. 희성전자 직원 1천700명은 작은 노력도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매년 실감하고 있다. 희성전자는 2010년부터 전 직원들의 매월 급여에서 1천원 미만씩을 불우이웃 성금으로 모았다. 이렇게 모인 금액이 지난해 말까지 1천만원에 달했다. 여기에 부장회, 차장회, 사내 상조회 등이 더 모아 2천만원을 만들었고 마지막으로 회사 차원에서 8천만원을 기부하기로 결정해 지난해에는 1억원을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달했다.

모금활동은 올해도 추진한다. 직원들은 자판기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금액이라는 생각에 아무 반발 없이 모금활동에 동참한다. 희성전자 류철곤 대표이사는 "오히려 직원들이 1천원은 너무 적은 것 같다고 1만원으로 올리자는 말도 나온다"고 말했다.

개인이 아닌 자신이 소속된 회사가 나서서 기부한다는 것은 구성원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준다. 류 이사는 "회사 안에서 기부를 활성화하니 분위기가 밝아진 것 같다"며 "직원들도 혼자 하기에는 부담스러울 텐데 조금씩 부담해 큰 액수로 기부하니 자부심도 생기고 개인적으로도 뿌듯해한다"고 말했다.

기부참여를 원하는 기업은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 계좌나 각 동 주민센터, 방송사 등에 성금이나 물품을 기탁하면 된다.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김찬희 주임은 "어떤 기관에, 얼마를 기부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모금회에 연락해 상담을 하면 된다"고 말했다.

김의정 기자 ejkim9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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