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가장 화제가 되었던 뉴스는 대한항공 부사장이 기내 서비스 문제로 비행기를 후진시키고 사무장을 내리게 한 '진상' 짓의 진상(眞相)이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거기에다 회사 명의로, 자기 잘못은 없다는 느낌을 주는 무성의한 사과까지 더해지면서 작년 라면 때문에 항공기 기내에서 소란을 일으킨 철강회사 임원을 능가하는 '최고의 진상'이라는 평을 받았다. 요즘은 이번 사건처럼 예의가 없고,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진상'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그런데 '진상'이라는 말은 새로 만들어진 말이기 때문에 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다. 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말로는 비슷한 상황에 쓸 수 있는 것이 '꼴불견' '밉상' '화상' 등이 있는데, 이것들은 어감이 달라서 '진상'이라는 말이 더 널리 쓰이고 있다.
'진상'은 원래 유흥가 쪽에서 술 먹고 추태를 부리는 사람, 손님이라고 종업원들을 함부로 대하고, 말끝마다 "사장 나오라고 그래"를 외치는 매너가 좋지 않은 사람을 이르는 은어였다. 그러던 것이 문화방송의 '무한도전'에서 정형돈 씨가 추는 춤을 '진상 댄스'(술 취한 사람이 추는 아주 저질스러운 춤)라고 이름 붙임으로써 널리 쓰이게 되었다. 태생이 유흥가의 은어였으니 어원을 밝힌다는 것이 쉽지는 않은데, 사람들은 이 진상의 한자가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신문에 가장 많이 나온 설은 '진귀한 물품이나 지방의 토산물 따위를 임금이나 고관 따위에게 바침'의 의미를 가진 '진상'(進上)에서 왔다는 것이다. 진상품을 관리하는 것에 폐단이 많아 '겉보기에 허름하고 질이 나쁜 물건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 되었고, 그것이 나쁜 사람을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나름 역사적인 배경까지 끌어들여 설명을 하고 있지만 이 설명을 듣고 나도 '아하, 그렇구나!' 하는 느낌은 없다.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쓸 이유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특히 유흥가 쪽에서 쓰는 은어가 그런 복잡한 사고 과정에서 생겼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나마 가장 유력한 것은 '진짜 상놈'의 준말이라는 설이다. '상놈'이라는 말은 국민의 100%가 양반인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신분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예의범절에 대한 근본이 없고 버릇이 없는 사람을 비하하는 말이다. 그렇게 보면 '진상'은 상놈 중의 상놈이라는 뜻이 되므로 우리가 실제로 쓰는 '진상'의 의미와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냥 보기 민망하다는 의미가 강한 '꼴불견'이나, 반어적으로 귀엽다는 의미로도 쓰일 수 있는 '밉상', 행동이 굼뜨고 한심해서 연민까지 불러일으킬 정도인 '화상'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쨌든 세상에 '진상'들이 많아지면서 이제 이 말은 대체 불가능한 말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능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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