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홀로 딸 키우다 뇌종양 투병하는 권명숙 씨

"딸아이에게 짐 될까 더 걱정…빨리 나아야죠"

권명숙(가명
권명숙(가명'56) 씨는 좁은 원룸에서 매일 딸 지윤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식당 일을 하며 딸을 돌봤지만, 머리 속에 6개의 뇌종양이 발견된 이후 딸을 기다리는 것 외엔 별다른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잘해준 것도 없는 엄마인데 아프기까지 해서 딸 아이한테 너무 미안해요."

권명숙(가명'56) 씨는 좁은 원룸에서 매일 딸 지윤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식당 일을 하며 딸을 돌봤지만, 머리 속에 6개의 뇌종양이 발견된 이후 딸을 기다리는 것 외엔 별다른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방사선 치료와 한 움큼씩 먹는 약 때문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해 몸은 하루하루 말라간다.

"저 때문에 학교에서도 마음 편하게 있지 못할 딸을 생각하면 미안하죠. 얼른 나아서 예전처럼 일도 하고 딸도 돌봐줘야 하는데…."

◆홀로 딸을 키운 억척 엄마

명숙 씨는 지윤이가 갓 돌이 됐을 때 남편과 살던 집에서 도망쳐 나왔다. 어릴 적 부모님이 돌아가신 명숙 씨는 기댈 친정도 없이 홀로 어린 딸을 키워야 했기에 막막했지만, 각종 범죄로 교도소를 오가고 여성 편력까지 있었던 남편을 참아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아이가 보고 배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힘들어도 혼자서 키우는 게 차라리 낫겠다 싶어 남편을 떠났죠."

홀로 지윤이를 키우는 명숙 씨에게 세상은 녹록지 않았다. 특별한 기술이나 경력이 없다 보니 변변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고, 근로 능력이 있는 남편과 이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집을 나오는 바람에 기초생활수급 혜택도 받지 못했다. 친언니 집 근처에 살며 틈틈이 지윤이를 맡기고 허드렛일을 하면서 기저귀 값과 분유 값을 벌었다.

"언니도 넉넉지 않은 살림이라 우리 애를 맡기는 것도 정말 눈치 보였죠. 그래도 둘이서 먹고살려면 당장 일을 해야 하니 염치 불구하고 아이를 맡겼어요."

다행히 지윤이는 건강하고 착하게 자랐고 명숙 씨도 일정한 일자리는 아니었지만 두 사람이 먹고살 수 있을 만큼은 돈을 벌었다. 그렇게 명숙 씨는 딸이 예쁘게 커서 직장을 가지고 가정을 이루는 소박한 꿈을 키워갔다.

◆모녀의 삶을 망가뜨린 뇌종양

하지만 명숙 씨의 건강이 심상치 않았다. 날이 갈수록 두통이 심해졌고 당뇨까지 생겼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일할 수 없는 날들이 많아졌고 살림은 빠듯해졌다. 두 사람이 사는 원룸의 보증금은 월세로 대부분 깎아 먹었고, 경제적으로 힘든 생활이 지속되면서 명숙 씨는 불안증세와 우울증까지 겪기 시작했다.

올 들어서는 두통이 너무 심해 병원을 찾아갔지만 수십만원이 드는 정밀검사를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고 비용부담 때문에 두통약만 받아 돌아서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렇게 약으로 버티던 명숙 씨는 지난 9월 딸과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내다가 갑자기 쓰러졌다. 병원에 도착한 명숙 씨의 머리에는 6개의 크고 작은 뇌종양이 자리 잡고 있었다.

뇌종양 앞에서 명숙 씨는 한없이 작아졌다. 일을 하지 못하게 된 데다 병원비 부담까지 생겼고, 돌봐줄 사람마저 없어 딸 아이가 학교를 빠지면서까지 자신을 돌봐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남편과 이혼 수속을 밟으면서 병원비는 생각만큼 많이 나오지 않았지만 당장 일을 할 수 없으니 경제적 부담이 너무 컸어요. 원룸 월세도 내지 못해서 방을 빼줘야 하는 상황까지 처했으니까요."

◆딸에게 짐이 될까 두려운 엄마

명숙 씨는 10월 6개 중 4개의 뇌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고 이후 27번의 방사선 치료를 거쳤다. 딸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지만 아직 제거해야 할 2개의 종양이 남았고 완벽하게 예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하지만 자신의 건강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건 딸의 미래다. 아픈 엄마가 딸에게 짐이 될까 걱정되고 앞길을 막을까 두렵다. "수술을 할 때마다 1, 2주는 학교에 가지 못한 채 병원을 지켜야 하고 이번 겨울 방학에는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려고 하는데 제가 딸에게 짐이 된 것 같아 너무 미안하죠."

명숙 씨의 더 큰 아픔은 꺾여버린 딸의 꿈이다. 여군을 꿈꾸던 지윤이가 엄마가 쓰러지면서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기 때문. 엄마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게 안정적인 직업 중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다 보니 여군을 선택하게 됐는데, 이제는 엄마를 홀로 둘 수 없어 그 꿈을 접어야만 하는 것이다.

"자식이 엄마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데 고개를 들 수가 없죠. 아직 한창 공부하고 친구들이랑 놀러다닐 때인데 돈 벌 생각을 하는 걸 보면 더 마음이 아파요."

명숙 씨의 바람은 예전처럼 다시 일을 하며 딸을 돌보는 것이다. 딸이 걱정 없이 학교를 졸업하고 또래 아이들처럼 지내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명숙 씨가 건강을 회복해야 한다.

"당장 다음 달엔 월세 방도 빼주고 길거리에 나가 앉을지도 모르겠어요. 그저 둘이서 오순도순 사는 거 외엔 바라는 게 없었는데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제 목숨이야 어찌 되도 상관없지만 우리 애는 너무 불쌍해요."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주)매일신문사 입니다. 이웃사랑 기부금 영수증 관련 문의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대구지부(053-756-9799)에서 받습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