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2,200년 전

세계 최대의 땅덩어리와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의 시황제는 사사여생(事死如生)을 꿈꾸었던 모양이다. 2천200년 전 겨우 열세 살에 왕좌에 올랐을 때부터 그는 자신의 무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고분 안에 거대한 지하 궁궐을 건설하여 살아생전 황실 근위대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

앞줄에는 측면을 보호하는 궁수들과 함께 전투대열로 서 있는 보병대와 기병대 병사 1천여 명을 배치했다. 중간에는 병사 1천500여 명과 수레 및 말을, 맨 뒤에는 고관과 궁인 수천 명을 도열시켰다. 대부분 실물 크기의 진흙으로 만들었으나 생매장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왕릉 건축에 관련된 사람들은 기밀 유출을 우려하여 매장 직후 능 안의 모든 문을 걸어 잠가 그 안에서 생죽음을 시켰다.

2천200년 후, 비밀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터져나왔다. 옥수수밭에서 우물을 파던 한 농부가 실물 크기의 병사도용이 있는 갱(坑)을 발견한 것이었다. 2천200년 동안 긴 잠을 자던 진시황의 병마대군이 땅 위로 치솟는 순간이었다.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다투어 참관했고, 전 프랑스 대통령 시라크는 "피라미드를 보지 못했다면 이집트를 여행한 것이 아니고, 병마용을 보지 않았다면 중국을 여행한 것이 아니다"라고 감탄했다. 현존하는 세계 7대 불가사의는 8대 불가사의가 되었다.

진시황은 쉰 살에 세상을 떴다. 그의 사후 2천200년 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지하 궁궐에서는 8천여 개의 병마용이 발굴되었다. 후손들은 공자에 이어 지구 상 전무후무의 관광상품을 유산으로 얻어 흥분했다. 경제 부처에서는 상품 가치를 추정하기에 분주했고, 관광회사에서는 홍보 자료 제작에 밤을 밝혔다. 옥수수밭에서 우물을 파던 농부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병마용갱의 발견으로 일약 스타가 되었다. 지금도 그는 홍보 서적을 사러 온 관광객들에게 사인을 해 주느라 몹시 바빴다. 내가 기웃거리자 재빨리 한국어로 된 책을 권하는 센스도 보였다.

"쎄쎄!" 지갑을 열려 하자 책 앞장에 얼른 자신의 이름과 날짜를 써 주었다. 책을 받으려는 순간 남자의 눈은 어느새 일본 관광그룹으로 향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 그가 만일 2천200년 전에 왕릉 근처에서 우물을 파다 들켰다면? 당시 약 70만 명이 동원되었다는 지하 왕릉 건설에 노예나 죄수로 끌려갔다면? 떠날 시간이 되었는지 일행이 옷자락을 끌어당겼다.

小珍 에세이 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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