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포스코에너지 왕모 상무가 대한항공에 탑승했다가 라면 맛이 시비가 돼 승무원을 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그 파장은 대단했다. '갑의 횡포'에 대한 비난이 공론화된 것은 물론이고 을의 불편부당한 고충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사실 가해자는 재벌도, 거부도 아니고 회사원 중에서 월급을 많이 받는 대기업 임원에 불과했지만, 그 사건으로 사회적 삶이 거의 끝장나 버렸다.
당시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은 그 사건을 계기로 기내 폭행에 대한 사회적 계몽 효과를 봤다며 공익적 측면을 강조한 뒤, 사내게시판에 "폭행 현장에 있었던 승무원이 겪었던 수치심이 얼마나 컸을지 안타깝다"고 글을 올렸다.
그런 조 부사장이 최근 견과류 봉지를 뜯지 않고 건넸다는 이유로 사무장과 승무원에게 폭언을 퍼붓고 폭행했다. 그래도 분이 안 풀렸던지 비행기를 돌려 사무장을 내려놓고 다시 출발해 국민의 공분을 샀다. 몇 달 전만 해도 왕 상무를 응징하며 을의 권리를 옹호했던 조 부사장이 지금은 '슈퍼 갑'의 횡포를 넘어 부의 세습과 재벌에 대한 비난의 대명사로 떠오르고 있다.
각종 매체에서는 과보호와 특권의식으로 키워진 그저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재벌 자식에 불과하다 보니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며 혹평을 늘어놓았다. 이런 대형사건을 일으켰지만, 그가 왕 상무처럼 완전히 파멸할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없다. 이 사건이 잊힐 때쯤이면 현업에 복귀할 것이 분명하다. 달리 재벌 3세인가.
"창업자는 기업을 설립하고, 2세대는 기업을 물려받고, 3세대는 기업을 파괴한다"는 유럽의 격언이 있지만, 우리 재벌 2, 3세들도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포항만 봐도 그렇다. 지역 대표 향토기업의 2세들이 도박과 해외 재산 은닉 등으로 구설에 오른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3세들도 실정법을 어겨 법정에 들락거리고 있다. 이제 시민들은 이들 토호가 저지르는 일에 놀라지도 않는다.
생산활동에 기여하지 않고 부동산, 행정기관과의 부당거래 등으로 어마어마한 돈을 벌다 보니, 허구한 날 딴짓 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질 정도다. 또 특권의식만 커지다 보니, 자신들을 위해 일하는 직원들의 팍팍한 삶이 눈에 들어올 리도 없다.
그렇다 보니 직원이 등을 돌려 칼을 대는 것이 순서로 느껴질 정도다. 요새는 가족 간 재산소송으로 집안이 시끄럽다고 하니, 3세대에서는 기업이 어떻게 될지 안 봐도 뻔한 일이다.
스스로 생활비를 벌며 해군 장교가 된 배울 점 있는 재벌 자녀처럼 살 것인지, 땅콩리턴이나 하는 한심한 재벌 자녀처럼 살 것인지, 답은 뻔한데 포항에서는 후자를 택한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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