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한 개를 가지면 하나가 더 갖고 싶어진다. 초겨울, 바람이 갈기를 세우는데 누이가 담벼락에 앉아 검정 고무신을 쪽쪽 찢고 있다. 아직 멀쩡하여서 몇 달은 더 신을 것 같은데. 그 모습을 엄마에게 들키거나 아버지가 보셨다면 경을 칠 행동이었다.
누이는 왜 멀쩡한 고무신을 찢었을까. 도대체 이해가 안 가는 행동이었다. 검정 고무신은 오래 신으면 쉬 미끄러져서 잘못하면 넘어지기 일쑤였다. 특히 여름에 땀이 나면 걸핏하면 벗겨져 잃어버리기 쉬웠다. 그러면 짝짝이 신발을 신고 다녔다. 하지만 꼭 그 이유 때문만 아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벗과 하굣길에 냇가에서 놀다가 친구가 물에 떠내려가는 고무신을 건지려 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그다음부터는 그 동무 엄마가 누이가 자기 딸을 물에 떠밀어 넣었다며 등하굣길의 방해로 학교를 못 다닌 것이다.
그때 우리는 모두 검정 고무신을 신었다. 흰 고무신보다 싸고 더 질기다는 이유 때문이다. 운동화를 신는다는 것은 요즘 나이키 운동화를 받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 옆집에는 방학 때마다 대구에서 오는 한두 살 적은 동무가 있었다. 사촌 형제인 이들은 엄청 개구쟁이였는데 우리는 한 달 동안 같이 먹고 자고 천렵과 수박 서리를 하며 붙어살았다.
어느 장마가 지나간 날, 우리는 광에서 밀 한 되씩을 꺼내어 강 건너 있는 과수원에 사과를 사러 가기로 했다. 아직은 풋사과이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강에는 누런 흙탕물이 콸콸 흐르고 있었다. 평소에 있던 널빤지 다리는 흔적도 없고, 나룻배도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우리는 강가를 난망한 마음으로 걸었다. 그런데 엄마가 우리 이름을 부르며 숨이 턱에 차도록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아 뜨거워라" 하며 뛰었다. 그때 같이 가던 친구 하나가 "내 신발, 내 신발" 하며 비명을 질렀다. 돌아보니 꿈에도 신어보고 싶던 하얀 고무신이 강물 위를 둥둥 떠내려가고 있었다. 엄마는 어느새 손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다가와 있었다. 우리는 눈물을 머금고 아까 걸어오던 신작로를 가로질러 줄행랑을 쳤다.
동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뒷산에 앉아서 뻐꾸기 울음소리를 들으며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들판은 온통 초록빛으로 일렁이고 뭉게구름이 느릿느릿 흘러갔다. 그때 손에 잡힐 듯이 내려다보이는 저 아래에 엄마가 빨랫감 함지박을 이고 냇가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친구 하나가 "이야 여하 너거 엄마 되게 빠르다 언제 저기까지 갔노" 했다.
그로부터 3, 4년 후 우리는 백차를 탈 수 있게 되었고. 책보도 책가방으로 바뀌었다. 격세지감을 느끼는 옛날의 이야기다.
과연 우리는 하나를 더 가짐으로써 그만큼 행복해질까. 물질의 풍요가 정신적 빈곤감을 메울 수 있을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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