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님의 안내방송 다음으로 많이 들리는 것은 고물장수 아저씨의 텁텁한 목소리다. 못 쓰는 오토바이나, 자전거, 농기계, 혹은 전기제품이 있으면 팔라는 마이크 소리가 일주일에 두 번쯤은 들려온다. 이분이야말로 정기적으로 우리 마을을 찾아오고 있는데 우리 집에는 팔 물건이 없어서 아직껏 아저씨와 대면하지 못하고 있다.
종일 집에 있어보니 여러 가지 소리가 다양하게 들려온다. 가장 이른 시간에 듣게 되는 소리는 확성기로 들려오는 이장님들의 공지사항이다. 창문을 열어 놓으면 우리 마을뿐만이 아니라 옆 마을인 담안과 그 앞마을의 돌무리 이장님 목소리까지 들린다. 무뚝뚝하지만 정겨운 사투리로 공동작업이 있으니 동민들 다 나오라고 할 때도 있고, 면사무소, 보건소, 농협 등에서 조합원들에게 전달하는 내용도 있다. 며칠 전에도 마을 길을 청소한다는 옆 마을의 확성기 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남편은 공동작업을 하고 나면 나눠 먹는 간식에 입맛을 다시더니 기어이 옆 마을까지 가서 능청스레 막걸리 한잔을 얻어 마시고 기분 좋게 돌아왔다.
마을에 별일이 없으면 한동안 이장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 그럴 때면 좀 심심한 생각이 들어서 확성기를 통해 정기적으로 마을 소식을 전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혼자 해본다. "아, 아, 동민 여러분, 지윤이네 소가 쌍둥이 송아지를 낳았답니다. 다들 축하해 주세요"라거나 "해선이 아빠가 허리를 다쳐 당분간 일을 못하게 됐습니다.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혹은 "사과농원에서 B품 사과를 동네 분들께 싼값에 드린다고 합니다. 필요하신 분, 찾아가보세요". 그러다가 기분이 좋아진 이장님이 노래라도 한 소절 부른다면 마을 사람들의 하루가 유쾌하지 않을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
이장님의 안내방송 다음으로 많이 들리는 것은 고물장수 아저씨의 텁텁한 목소리다. 못 쓰는 오토바이나, 자전거, 농기계, 혹은 전기제품이 있으면 팔라는 마이크 소리가 일주일에 두 번쯤은 들려온다. 이분이야말로 정기적으로 우리 마을을 찾아오고 있는데 우리 집에는 팔 물건이 없어서 아직껏 아저씨와 대면하지 못하고 있다.
마을에 울리는 확성기 소리는 계절에 따라 그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봄에는 된장 담글 단지를 사라고 하거나 방충망 수리하라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 여름이 시작되면 가축을 사려고 들어오는 트럭이 많다. 개와 염소를 팔라는 소리가 골목을 한 바퀴 돌면 집집마다 개들이 짖느라고 마을은 한바탕 소동이 인다. 우리 집 장군이는 하울링까지 하며 개장수의 트럭이 마을을 벗어날 때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유독 개장수의 확성기 소리에 개들의 반응이 예민한 걸 보면 트럭에 묻은 어떤 냄새가 개들의 예민한 후각을 자극하지 않나 짐작해 본다.
내가 아직도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은 가을이면 들려오는 마늘 사라는 소리다. 집집마다 마늘 농사를 짓고 있는 시골마을 골목을 돌아다니는 마늘장수의 속내가 궁금하다. 한번은 도대체 어떤 마늘을 싣고 다니는가 싶어서 집 앞을 지나가는 마늘 트럭을 세워서 들여다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우리 동네에 마늘을 사먹는 사람이 있는지 여전히 궁금하다. 겨울에는 산불 조심하라는 소리가 많이 들린다. 빨간 깃발을 꽂은 트럭이 지나가면서 "산불을 조심합시다, 산은 우리의 소중한 자산입니다"라는 소리를 반복적으로 내면 나무가 타고 있는 화목난로를 한 번 더 바라보게 된다.
조용할 거라고 생각했던 시골에서 도시보다 더 다양한 소리를 듣고 있다. 집 앞 대나무 숲에 둥지를 튼 참새 떼들이 늘 재잘거리고 아침마다 닭이 울고, 밥 달라고 개가 짖는다. 우리 뒷집 소들은 가끔씩 시간을 가리지 않고 큰 소리로 울부짖을 때가 있다. 무슨 일인가 물어보니 발정기 때는 짝을 찾느라고 종일 울음소리를 낸다고 한다.
온갖 동물들이 소리를 통해 그 나름대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면 식물도 그들만의 언어로 다양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어르신들은 심어놓은 작물이 자라는 소리가 들리니 발길이 저절로 논밭으로 향한다고 한다. 귀촌 초보인 나와 남편은 개들이 낑낑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 원하는 바를 다 알지 못하는 처지니 식물들이 말하지 않고 내는 소리를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작물이 자라는 소리에 가던 길 돌려서 텃밭으로 향하는 날이 올 거라는 기대감을 안고 있다. 마당 가득 햇살이 비치는 겨울 한낮, 툇마루에 앉아 아직은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기 위해 가만히 귀를 기울여본다. (끝)
배경애(귀촌 2년 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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