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국제시장/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

국제시장
국제시장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

◆'국제시장'

천만 관객 영화 '해운대'의 윤제균 감독이 야심 차게 내놓은 역사드라마.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피란을 오게 된 한 남자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굴곡진 대한민국 역사의 수레바퀴와 맞물리며 파란만장하게 펼쳐진다. 겨울방학 시즌에 가족관객을 노린 영화로, 현재 다큐멘터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한국영화 흥행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강자의 출현이 기대를 모은다.

흥남부두에서 미군의 철수선을 타고 부덕수(황정민)와 다섯 식구는 1950년에 전쟁을 피해 부산으로 피란을 온다. 어린 덕수는 전쟁 통에 헤어진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와 두 동생을 이끄는 가장이 되고, 고모가 운영하는 국제시장의 수입 잡화점 꽃분이네에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간다. 그는 남동생의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독일 광부로 떠나고, 그곳에서 첫사랑이자 평생의 동반자가 될 간호사 영자(김윤진)를 만난다. 또한 가족의 삶의 터전이 된 꽃분이네를 지키기 위해 선장이 되고 싶었던 꿈을 접고 베트남전에 기술 근로자로 참전한다.

영화는 지금 현재 시점에서 70대 후반의 노인이 된 덕수가 1950년 흥남부두, 1960년대 독일 광부파견과 베트남 참전, 그리고 1980년대 남북 이산가족 찾기라는 굵직한 사건의 한가운데에서 겪은 이야기들이 회상 방식을 통해 펼쳐진다. 지금은 고집불통 노인이 되어 가족들 사이에서도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고 있지만 덕수에게도 찬란한 시절이 있었다. 눈물 어린 고생담, 가난한 가운데에도 잃지 않았던 웃음, 애틋한 로맨스, 치열한 전투 등, 영화는 울리고 웃기며, 흐뭇하거나 긴장감 있게 이야기 속으로 몰입하게 한다. 나도 모르게 줄줄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한평생 치열하게 살아온 노인이자 아버지에게 박수를 보내게 된다.

꽤나 재미있고, 볼거리도 풍부하며,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를 만들리라는 야심 찬 계획 아래, 실제 역사를 밑바탕으로 펼쳐지는 가상의 이야기들이 있고, 가상 인물들이 실존 인물들과 만나게 되는 장면에서는 상상력의 기발함에 웃음 짓게 한다.

그러나 영화는 짙은 감동과 여운을 남기는 수준까지는 도달하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다양한 사건들은 있되, 역사관은 없다는 점에서 허무해진다.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해 보인다. 세대 갈등이 도를 넘어 세대 전쟁으로 보이는 시대에 아버지 세대를 따뜻한 눈으로 이해할 때 사회 전체가 화합할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가부장이라는 무거운 책임을 짊어진 한 남자의 고난은 지지리도 운이 없어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 역시 권위주의가 팽배하던 지난 시절의 피해자일 뿐더러 주요 역사적 고비마다 자신의 입장이란 것이 있었을 터이다. 사회와 역사를 바라보는 개인적 관점이 실종되어 버린 빈자리가 아쉽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

올해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오른 프랑스 예술영화. 실스 마리아는 스위스 알프스에 위치한 작은 도시다. 제목 '실스 마리아의 구름'은, 구름이 계곡으로 몰려와 땅과 하늘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처럼 연극과 현실을 떼어놓기 힘든 주인공의 처지를 비유한다.

영화비평가로 활약하다가 1990년대 프랑스 영화계의 새로운 세대를 연 감독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은 자신이 흠모하는 작품들을 응용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클린'으로 장만옥에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겨주는 등 여배우에게서 완벽한 연기를 끌어내는 것이 강점이다. 영화는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장기가 최대로 발휘된 작품이다. 프랑스 대표 명배우 줄리엣 비노쉬, 그리고 할리우드 스타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클로이 모레츠가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스무 살 시절, 연상의 상사인 헬레나를 유혹해 자살로 몰고 가는 젊고 매력적인 캐릭터 시그리드 연기로 단숨에 세계적인 스타가 된 마리아 앤더스(줄리엣 비노쉬)는 20년이 지난 지금, 자신을 스타로 만들어준 연극의 리메이크 버전에 출연 제의를 받는다. 그녀에게 맡겨진 역할은 비극의 상사 헬레나이다. 리허설을 위해 비서 발렌틴(크리스틴 스튜어트)과 함께 알프스의 실스 마리아를 찾은 마리아는 연극과 영화를 바라보는 관점이 매우 다른 발렌틴과 자잘하게 충돌한다. 게다가 새롭게 시그리드 역을 맡게 된 할리우드 스캔들 메이커 조앤(클로이 모레츠)의 젊음을 동반한 아름다움을 질투하게 되는 마리아는 헬레나 역할로 인해 계속해서 갈등한다.

실스 마리아는 특별한 곳이다. 니체가 요양을 하며 '영원회귀'의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 곳이며, 독일 산악영화의 명장 아르놀트 팡크의 '말로야의 구름 현상'이라는 1924년도 짧은 영화가 촬영된 곳이다. 실스 마리아는 하늘에 닿을 듯한 높은 땅이며, 영화 속 90년 전 영상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교차한다. 과거 젊은 주인공을 연기했던 마리아가 현재에는 나이 든 역할을 해내야 하며, 대배우가 된 그녀는 젊은 비서와 충돌하며 가상과 현실을 오간다. 영화는 여러 가지 경계 위에서 줄타기를 한다. 영광과 추락, 죽음과 생동, 젊음과 나이 듦의 경계에 선 삶과 인물, 그리고 연극과 현실.

젊은 날부터 언제나 스타였던 줄리엣 비노쉬와 실제 스캔들 메이커인 하이틴 스타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자연인으로서의 자신들을 패러디하며 영화의 이야기 속으로 녹아든다. 유한한 젊음과 삶, 그리고 그보다는 훨씬 더 큰 자연과 예술이 서로 대조되며, 그 안에서 보잘것없는 인간 욕망의 본질이 포착된다. 배우도 관객도 그 과정에서 훨씬 성숙하게 된다. 그 어느 해보다도 풍성했던 2014년 극장가를 마지막까지 풍성하게 장식할 영화이다.

정민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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