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국물정 몰라 만만? 이주여성 노동자 인권 사각

대구이주여성센터 설문조사

중국에서 온 A(39) 씨는 한국 남성과 결혼해 3년 전 대구의 한 섬유공장에 취직했다. A씨는 최근 남편과 별거 중이고, 딸과 단둘이 지낸다는 사실이 직원들에게 퍼지면서 이들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 '같이 술 한잔 하자' '여행가자'라는 말을 들은 것은 물론, 전화나 문자메시지로도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했다. 더욱이 일부 직원은 주말에도 A씨의 집 앞까지 찾아와 불러내자 이를 참지 못한 A씨는 결국 직장을 그만뒀다. A씨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참고 다니려고 했지만 결국 한계를 넘어섰다. 남자 직원들이 대부분이라 성희롱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했고 정식으로 호소할 만한 곳도 없었다"고 눈물을 훔쳤다.

대구지역 이주여성 노동자 상당수가 직장 내 성희롱을 경험했으며, 최저 시급액 이하의 봉급을 받는 등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인권운동단체인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가 지역에서 일하는 이주여성노동자 203명을 대상으로 지난 8~10월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중 19.8%가 직장 내 성희롱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이 경험한 성희롱 유형 사례는 ▷의도적인 신체 접촉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농담 ▷휴대폰 등으로 음란물 보여주기 ▷강압적인 데이트 요구 등이 꼽혔다.

또 이주여성 노동자 10명 중 2명은 직장 내 성희롱을 당했지만 예방교육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장 규모에 상관없이 1년에 1시간 이상은 반드시 모든 직원이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아야 하지만, 응답자 중 직장에서 예방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답한 비율은 78%에 달했다. 직장 동료 및 상사에게 성희롱을 당해도 직장 내에서 이를 호소할 부서가 없는 곳도 10곳 중 8곳이나 됐다.

임금 문제도 심각했다. 이주여성 노동자 중 법정 최저 시급인 5천210원(2014년 기준) 이하를 받는 비율은 42.3%로 조사됐다. 센터 측은 "이주여성들이 한국 물정에 어두워 이를 악용하는 사업주가 많다. 또한 상당수 이주여성은 최저임금에 못 미친다는 것을 알면서도 소규모 사업장은 상황이 비슷하다고 생각해 옮기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최현진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이주여성 근로자 중 상당수는 직장 내 성희롱이나 임금 문제 등을 호소하지만 정작 센터나 여성단체로 도움을 요청하는 사례는 한 해에 1, 2건에 불과하다"며 "고용 당국에서 이주여성을 고용한 사업장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이주여성에게 한국어교육, 학력증진사업 등의 지원을 늘려 이들이 노동현장에서 겪는 피해를 줄여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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