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러시아 두 번 죽이기

옛 소련을 무너뜨린 것은 사실상 석유라고 봐도 지나치지 않다. 1985년 9월 13일 당시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 야마니는 "더 이상 유가를 떠받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세계 최대 산유국이면서 국제 유가를 쥐락펴락하던 사우디 석유상의 발언은 유가 폭락으로 이어졌다. 배럴당 32달러이던 국제 유가는 졸지에 10달러까지 떨어졌다. 사우디의 석유정책 변화에 정작 피해를 본 것은 소련이었다. 소련은 배럴당 6달러까지 낮춰 석유를 팔았다. 외화 수입은 뚝 떨어지고 석유 의존도가 높던 경제는 파탄지경이 됐다. 소련을 지탱하던 연방국 간의 끈도 약해졌다. 이후 소련은 해체의 길로 들어섰다. 훗날 러시아 총리를 지낸 예고르 가이다르는 "당시 매년 200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는데 그래서야 버틸 재간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반면 사우디는 여유로웠다. 유가가 떨어지면 무한정 매장된 석유를 캐내 팔면 그뿐이었다, 유가는 3분의 1 토막이 났지만 하루 생산량을 200만 배럴서 1천 만 배럴로 늘렸으니 수입은 늘었다. 반사이익을 챙긴 것은 미국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의기투합했건 않았건 미국은 그 대척점에 섰던 소련을 제거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더니 최근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4년여 동안 100달러를 웃돌던 유가가 몇 달 새 반 토막이 났다. 역시 사우디아라비아가 전면에 서 있다. 나이미 사우디 석유장관은 이번에도 "유가는 시장 원리에 따라 오르고 내리는 것"이라며 감산에 대해 모르는 체하고 있다. 덕분에 유가는 70달러, 60달러대를 거쳐 50달러대까지 곤두박질을 치고 있다.

석유 생산원가가 30~40달러대에도 못 미치는 사우디는 아직 끄떡없다. 이번에도 비상이 걸린 것은 러시아다. 러시아는 여전히 재정수입의 절반 이상을 원유수출에 의존하고 있다. 수지를 맞추려면 적어도 유가가 100달러는 돼야 한다. 그렇다 보니 루블화가 폭락하고 디폴트(채무지불유예)설까지 파다하다.

소련 붕괴 후에도 미국과 러시아는 여전히 껄끄럽다. 특히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더 그렇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비롯해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다. 사우디가 앞장선 이번 유가 폭락을 보며 또다시 미국의 러시아 죽이기라는 데자뷔를 보는 듯하다. 물론 잘못은 30년 전 교훈을 잊은 채 경제 체질을 강화하지 못한 러시아 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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