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에이(KOEI)사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삼국지'는 훌륭한 게임이지만 결정적인 결함이 있다. 어려운 초반만 넘기고 나면 후반부가 너무 쉽고 시시해져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전략 시뮬레이션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삼국지'보다 고전게임 '수호지'가 훨씬 더 높게 평가된다. 언뜻 보면 비슷한 인터페이스의 게임이어서, 캐릭터가 유비에서 송강으로, 장비에서 이규로 바뀔 뿐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 '수호지', 진행하다 보면 점차 제작진이 안배해 놓은 지옥과 같은 난관이 하나둘씩 드러나며 흥미진진해진다.
배경은 소설 '수호지'와 똑같다. 북송 시절, 공 차는 재주 하나로 단왕의 총애를 받던 날건달 고구라는 녀석이 있다. 그런데 어쩌다 단왕이 덜컥 황제가 되어 버리자, 고구는 그 기세를 타고 대송의 권력을 한 손에 거머쥔다. 게이머는 수채 양산의 호걸이 되어 저 무도한 고구를 물리치고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휘종이 고구를 총애하고 있기 때문에 게이머는 저 고구를 마음대로 죽일 수가 없다는 점이다.
고구를 죽이려면 백성들에게 250의 인기도를 얻어내야만 하는데, 이를 달성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우리는 '실세'인 고구를 칠 수 없는데, 반대로 고구 측은 우리를 괴롭힐 수가 있어서 250이라는 인기를 달성하는 동안 가혹한 새경과 협박 등 갖은 고초를 다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 골치 아픈 점은 게이머가 영웅들을 일사불란하게 영입, 활용할 수 있는 '삼국지'와는 달리 이 '수호지'의 영웅들은 개성들이 강해 영입도, 관리도 어렵기 한이 없다는 것.
게이머를 미치게 만드는 마지막 제약은 바로 시간이다. 플레이어는 반드시 20년 안에 고구를 죽여야 되는데, 만약 20년이 넘어 1127년이 되면 무적의 금나라가 쳐들어오게 된다. 이 금군의 출현은 게임의 끝을 의미한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고구를 포위해 죽이려는 순간에 이들이 들이닥치면, 그냥 종료하고 시작 지점으로 다시 '윤회'할 수밖에.
정리하면 이렇다. 물리쳐야 할 간신이 있는데, 최고 권력은 그를 싸고돌고, 백성들의 여론은 시큰둥하며, 야인들은 제 잘난 맛에 사분오열되어 있고, 외적들의 성장은 가파르다. 나는 중학생 시절 '삼국지'를 플레이하며 수차례나 장양이니 건석이니 하는 '십상시'들을 잡아 봤지만, 결국 이 고구만은 죽이지 못하고 '수호지' 게임을 지워야만 했다. 참 나쁜 게임! 시뮬레이션 게임은 마땅히 가상의 현실이어야 하거늘, 게임을 이다지도 칼 같은 실사의 반영으로 만들어 놓다니. 게임마저 이러면 물길 70리 산채 하나 없을 우리가 무슨 다른 오신망상이 있어 이 기막힌 북송의 패망을 잊으리오?
박지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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